[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중동 원정은 '가시밭길'이라 불렸다. 기후나 잔디, 시차, 텃세, 음식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기 어려웠다. 중동의 독특한 응원과 '침대축구'도 짜증을 유발시킨다. 아시아에서 적수가 없던 한국축구지만, 2003년 10월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02위 오만에 1대3으로 충격패했던 '오만쇼크', 2011년 11월 FIFA랭킹 146위 레바논에 1대2로 패했던 '레바논쇼크' 등 중동 원정은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다.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올림픽 등 예선 조추첨마다 중동은 피하는게 상책이라고 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안방처럼 편해진 중동 원정이다. 한국은 최근 치른 중동팀들과의 10번의 원정경기에서 7승2무1패를 기록했다.(카타르월드컵, 카타르아시안컵 본선 제외) 유일한 1패는 2022년 3월 29일 아랍에미리트(UAE)에 0대1로 진 경기인데, 이마저도 카타르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은 후 느슨한 경기 운영으로 당한 패배다. 내용에서는 우리가 크게 앞섰다.
중동 원정이 편해지자, 월드컵 가는 길도 수월해졌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이란, UAE,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과 함께 한조에 속했다. 이번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에서도 이라크,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 함께 묶였다. 모두 중동팀이었다. '중동 파병'이라는 팬들의 반응 속,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중동 원정에서 승점을 쓸어 담았다.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에선 중동 원정 성적이 3승1무1패였다. 한국은 승점 23점으로, 이란(승점 25)에 이어 조 2위로 카타르행을 확정지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가장 수월한 본선행이라는 평가였다. 이번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도 비슷하다. 첫 승을 중동 원정에서 신고했다. 오만과의 2차전에서 3대1 승리를 거두며 궤도에 올랐다. 이어 요르단 원정에서 2대0, 쿠웨이트 원정에서 3대1 승리를 챙겼다. 비록 중립지인 요르단에서 펼쳐진 팔레스타인과의 6차전에서 1대1로 비긴게 옥에티기는 하지만, 한국은 순항하며 B조 선두를 질주했다.
달라진 배경에는 역시 유럽파가 있다. K리거와 J리거 등 동아시아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이던 시절, 대표팀은 비행기만 10시간 이상을 타는 강행군을 펼쳐야 했다. 각종 변수 속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표팀의 중심이 유럽파로 이동하며 기류가 바뀌었다. 이번 11월 A매치 베스트11에서 유럽파는 절반이 넘는 6명이었다. 중동파도 2명이나 됐다. 유럽에서 넘어오는 비행 시간과 시차를 감안하면, 오히려 한국에서 하는 홈 경기보다 중동 원정이 더 편해졌다. 실제로 10월과 11월 A매치 첫 경기였던 요르단, 쿠웨이트 원정에서 경기력이 더 좋았다.
여기에 중동이 스폰지 잔디에서 유럽형 잔디로 바꾼 것도 태극전사들에게 호재였다. 기술적인 선수들이 늘어나며 잔디가 주는 영향도 무시하지 못했는데, '캡틴' 손흥민(토트넘)도 지적할 정도로 잔디 상태가 좋지 않은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달리, 중동 경기장의 잔디는 우리 유럽파에게 훨씬 친숙하고, 편했다. 이제 '힘겨운 중동원정, 모래바람을 뚫어라'는 문구는 옛말이 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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