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KIA 타이거즈 김선빈은 가장 먼저 "프로 생활하며 너는 키가 작아서 안된다, 한계다 라는 안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MVP를 받으며 그런 편견을 깨트린 것 같다"고 기뻐했다.
이미 15년 가까이 프로 생활을 하면서 '성공한 야구 선수'로 자리잡은 김선빈이지만, 입단 당시 1m64의 작은 키는 '센세이션'이었다. 천재적 운동 신경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듣고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까지 밀려 고향팀 KIA에 지명됐다. 지금은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언더 사이즈 선수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현재 리그에는 김선빈과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내고있는 선수들이 여럿이다. SSG 랜더스 신인 정준재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재학 중 얼리 드래프트로 지난해 SSG의 5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만 해도 정준재보다 상위 라운드에서 뽑힌 신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라운더 박지환이나 2라운더 이승민 등 고졸 신인들이 핵심 자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최후의 승자는 정준재였다.
6월부터 1군에서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더니, 공격과 주루 수비 모두에서 다부진 활약을 펼쳤다. 타석에서도 악착같이 볼을 고르고, 안타를 당겨서 밀어서 만들어서 치는 센스를 보여줬다. 입단 동기인 박지환과는 2루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나갔다.
정준재의 등장으로 '미지수'였던 SSG의 2루도 조금씩 윤곽이 드러났다. 개막 전 안상현, 최준우 등 선배 후보군들이 있었지만 시즌 마지막에 2루를 지킨 선수는 정준재였다. 비록 수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KBO 신인상 야수 후보는 10개 구단 통틀어 정준재와 황영묵(한화) 단 2명 뿐이었다.
정준재는 "5월초 처음에 1군 올라왔을때는 제가 긴장을 안하는 편인데도 팬들 소리도 안들릴 정도로 긴장을 했었다. 몸이 잘 안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2군에 한번 내려갔다 올라왔는데, 그때 손시헌 감독님이 '어차피 또 내려올거다. 마음 편하게 해라. 금방 오면 되는데 왜 그렇게 긴장하고 너의 것을 못하냐'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 뒤로 마음이 편해지더라. 다시 1군에 올라갔는데 마음 편하게 내 것만 하자는 생각을 했더니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뒤로 한번도 2군에 내려가지 않았다"고 첫 시즌을 돌아봤다.
생애 첫 홈런도 쳤다. 정준재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7월 27일 인천 두산 베어스전. 당시 두산 선발 최원준에게 퍼펙트로 막혀있던 SSG 타선은 정준재가 4회 1사에 친 솔로 홈런으로 굴욕을 깰다.
그게 정준재에게는 사실상 생애 첫 홈런이다. "대학 시절때 친 적이 있지만 워낙 작은 구장이었어서 그건 홈런으로 치지 않는다"는 정준재는 "치자마자 넘어갈줄 몰라서 일단 뛰었는데 홈런이 됐다. 1루 베이스 밟자마자 너무 좋아서 웃음이 막 실실 나왔다. 2루 밟고, 다시 3루 베이스를 도는데 실감이 나더라. 저도 모르게 웃으면서 뛰었다. 그때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고 당시의 행복감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의 올 시즌 기록은 88경기 타율 3할7리(215타수 66안타) 1홈런 OPS 0.776. 시즌 끝까지 컨디션이 크게 처지지 않고 3할대 타율을 꾸준히 유지한 것은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지난달 일본 가고시마에서 진행된 마무리캠프에서도 박지환, 고명준 등과 함께 '핵심 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고강도의 지옥 훈련을 소화해냈다. 이 역시 다음 시즌에 대한 구단의 기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반증이다.
그는 "내년에는 못해도 올해만큼은 했으면 좋겠다. 저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선배님들을 보면서 배울 점도 많다. 특히 저는 작전 수행을 잘해야하는 유형의 타자인데, 그걸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웠다. 코치님들 도움을 받아 연구를 많이 해서 내년에는 작전 수행도 완벽하게 해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 도루도 50개 이상 하는 게 목표다. 일단 목표를 크게 잡았다"며 웃었다.
올해 시행된 ABS에서는 키로 인한 이득을 본다고도 느꼈다. 정준재는 "솔직히 말하면 키 작은 선수들에게는 조금 이득이 있는 것 같다. 제가 생각해도 '이건 높은 스트라이크인데?'하는 게 볼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콜이 안나오면 투수도 당황하고, 포수도 당황하더라. 대신 반대로 낮은 것은 잘 잡아주는 경우도 있다. 다만 높은 볼에 있어서 약간의 이점이 있는 정도"고 설명했다.
정준재는 "저는 신체 조건만으로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신체 조건은 안좋아도 큰 사람보다 더 야구를 많이 하고,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도)절대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자기 능력이 있고, 작으면 작은대로 장점을 살릴 수 있다. 자신감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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