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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루게릭병 치료 길 열리나?…'차세대 RNA 편집 연구'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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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장종호 기자]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이 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에서 주목받을 만한 연구를 시작한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 기초의학사업추진단 합성생물학사업단 김영광 교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연구팀은 '차세대 RNA 유전자 편집 기술' 개발 과제를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선정돼 본격 연구에 착수한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2025년도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RNA(리보핵산)를 정밀하게 편집하고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새롭게 개발해 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에 응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영광 교수는 이번 과제의 책임 연구자로 선정됐으며, 김기표 교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과학교실), 채동우 교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송지환 대표(아이피에스바이오) 등 국내 유수 연구진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한다. 연구는 향후 5년 동안 진행되며, 총 28억 원의 정부 지원을 받고 이 중 18억 6000만 원이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집행된다.

이번 연구에서 핵심이 되는 기술은 'RNA 유전자 가위'다. 쉽게 말하면, 유전자 가위는 우리 몸의 유전정보(DNA 또는 RNA)를 정확하게 자르고 바꾸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유전자 가위는 대부분 DNA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DNA 편집 결과는 비가역적이어서 부작용 발생 시 복구가 어렵고, DNA를 자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포독성으로 인해 체내 유전자교정에 대한 안전성의 우려가 있었다.

반면 RNA는 DNA가 만든 '복사본'으로, 실제 단백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정보다. RNA를 편집하면 DNA는 그대로 두면서도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 생산을 조절할 수 있어 훨씬 더 안전하고 정밀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

이처럼 RNA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최근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다. 특히 이번 과제에서는 기존보다 훨씬 정밀하고 효율적인 RNA 유전자 가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과제의 제목은 '유도진화를 이용한 차세대 RNA 표적 CRISPR 유전자가위 고도화 및 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 응용'이다. 여기서 '유도진화'란 자연에서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진화 과정을 실험실에서 빠르게 재현해, 더 뛰어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유도진화는 201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기술이며, CRISPR 유전자 가위는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 기술로, 지금은 유전학, 암 치료, 희귀병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김영광 교수팀은 이 두 기술을 결합해, RNA를 더욱 정확하고 안전하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를 만드는 데 도전하고 있다.

기존의 RNA 유전자 가위는 높은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표적 정확성과 세포독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 치료제로서의 적용의 한계가 있어 왔다. 연구팀은 치료효과와 안전성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형태의 유도진화 실험과 단백질 구조 예측 AI기술을 통해 새로운 유전자가위를 만드는 데 도전할 예정이다.

이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난치성 신경계 질환' 치료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난치성 신경계 질환은 뇌와 척수, 신경계통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병으로, 대표적인 예로 루게릭병(ALS), 헌팅턴병, 파킨슨병, 희귀 유전 질환 등이 있다. 현재까지 완치가 어렵고, 증상도 점점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법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영광 교수팀은 RNA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병의 원인이 되는 RNA를 찾아내고, 이를 조절하거나 편집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이를 활용해 난치성 신경계 질환인 헌팅턴병과 펠리제우스-메르츠바하 병에서 RNA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새로운 치료 전략을 시도할 예정이다. 향후 이 기술이 완성되면 기존에는 손쓸 수 없었던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김영광 교수는 임상에서 신경과 전문의로도 5년간 환자들을 진료했다. 하지만 그는 직접 환자 치료를 넘어서, 질병의 근본 원인을 연구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만들고자 기초의과학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그는 이후 줄곧 CRISPR 유전자 가위와 RNA 편집 기술을 연구해 왔으며, 이번 과제는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기술력을 토대로 더욱 본격적인 연구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의사로서의 임상 경험과 연구자로서의 과학적 통찰이 동시에 녹아든 이 연구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환자 치료에 연결될 수 있는 응용연구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과제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내 병리학, 의생명과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과 함께, 외부 대학 및 민간기업까지 협력하는 다학제적 연구로 진행된다. 이는 단일 기술 개발에 머무르지 않고, 신약 후보물질 개발, 실험모델 검증, 산업화 가능성까지 아우르는 종합 연구를 의미한다.

아울러 이번 과제는 단순히 유전자 가위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밀의학' 시대를 여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밀의학이란, 환자 개개인의 유전 정보에 맞춰 맞춤형 치료를 하는 것을 말한다. RNA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런 정밀의학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앞으로 암, 유전병, 퇴행성 질환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톨릭중앙의료원 기초의학사업추진단의 합성생물학사업단 소속으로 이 과제를 이끌고 있는 김영광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치료법이 없어 고통받는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정확하고 안전한 의료기술 개발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