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종호 기자] "내 직장 세종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저와 쌍둥이 아이 모두 새 삶을 찾았습니다."
부천세종병원 간호사 A씨(32·여)는 출산을 앞두고 휴직, 집 근처(인천)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아 왔다.
임신 후 숨찬 증상이 계속됐지만, 쌍둥이를 가졌기에 다른 산모보다 조금 더 숨이 찬 것으로 보고 참고 지냈다.
건강에도 특별히 문제가 없어 임신 전·후 심초음파 등 검사를 해 볼 생각조차 못 했다.
산부인과에서도 다태임신으로 인한 증상이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숨찬 증상이 악화됐다.
숨이 차 눕지도 못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꽉 막힌 느낌이 지속됐다.
A씨가 임신 32주차에 접어든 만큼, 동네 산부인과 의사는 인천의 한 대학병원 진료를 권유했다.
◇'1%의 생존 확률' 이겨내고 쌍둥이 무사 출산
진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진단명은 '주산기심근병증(분만전후심근병증)', 심초음파 검사 결과 심기능(EF) 15% 정도에 불과한 심한 심부전 상태였다. 의료진은 심장이식까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급한 대로 응급 제왕절개 수술로 쌍둥이를 출산했고 이후부터 사투가 벌어졌다.
A씨는 출산 직후 심장성 쇼크가 생겨 심폐체외순환기(ECMO)를 적용했다. 심장성 쇼크로 인해 다량의 객혈이 동반됐고, 다량의 피가 A씨의 좌측 폐 기관지에 가득 혈전이 돼 호흡 기능을 방해했다.
의료진으로부터 사망 가능성에 대한 설명까지 들은 가족은 A씨의 직장이기도 하고 심장이식으로도 유명한 세종병원으로의 전원을 원했고, 이 소식을 접한 인천세종병원 김경희 심장이식센터장(심장내과)이 직접 A씨가 있는 병원을 찾아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곧바로 인천세종병원으로 이송했다.
이후 A씨는 이식 대기자 등록을 하는 등 본격적인 심장이식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대기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루 두 차례씩 기관지 내시경과 항응고제 약물요법을 병행하며 혈전으로 가득 막힌 폐 기관지의 혈전을 제거하는가 하면, 폐 기능이 나쁘면 심장이식이 불가능한 만큼 폐 기능 회복을 위해 기관절개술까지 받았다.
모든 과정에서 인천세종병원의 심장내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산부인과, 호흡기내과, 중환자의학과 등 소속 의료진이 긴밀한 협진을 시행하며 A씨를 지켰다. 그렇게 보름가량 버티던 중 심장 공여자가 나타났다. A씨는 출산과 심장성 쇼크 등 과정으로 수혈을 여러 차례 한 뒤라 이식면역에 대한 항체 값이 높은 상태였으나, 항체 값을 떨어뜨리고 이식을 할 정도로 A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인천세종병원 의료진은 고용량의 면역억제제 약물치료를 하며 바로 심장이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은 성공했다. 우려했던 이식 거부반응도 발생하지 않았다. A씨는 수술 전부터 좋지 않았던 신장 기능 탓에 투석 치료를 받다가 최근 무사히 퇴원, 쌍둥이 자녀들과 재회했다. 현재 산모와 쌍둥이 아이 모두 건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수술 전 나와 가족에게 통보된 의사의 소견은 '1%의 생존'이었다. 그런데 그 1%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곳은 분명 존재했다"며 "모든 의료진께 감사드린다. 나와 같은 질병과 상황에 높인 분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세종병원에서 새 삶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건강한 임신부 생명 위협 '주산기심근병증'이란?
한편, 건강하던 산모가 심장이식을 받을 정도로 갑자기 심장 상태가 악화된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주산기심근병증(분만전후심근병증)'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임신 중에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는 심혈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보통의 임산부는 비교적 젊고 건강한 여성으로 임신 전까지는 심혈관계에 특별한 이상이 없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심혈관계 진찰에 소홀해지기 쉽다.
게다가 임산부 대부분이 임신기 후반에 접어들수록 피로감과 운동 능력의 감소, 호흡곤란 등을 겪는데, 혹여 심부전 증상이었음에도 임신에 의한 자연적인 반응으로 오해해 진료를 안 받는 경우가 흔하며 그로 인해 조기 진단에 어려움이 있다.
임신 중에는 혈액량이 늘어나면서 심박출량이 30~50% 상승한다. 심박출량의 상승은 기존에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여성에게 심부전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임신은 심혈관계 질환이 없던 여성에게도 새로운 심혈관계 질환을 야기하기도 한다.
주산기심근병증(분만전후심근병증)은 임신기 중 마지막 1개월에서 분만 후 5개월 이내에 나타나는 임신 합병증이다. 허혈성질환 혹은 판막질환이 없으면서 심실 확장, 수축 기능 저하 등이 동반된다. 확장성심근병증과 형태가 유사하나 특정 기간의 여성에게 나타나므로 서로 다른 질병으로 분류된다. 주산기심근병증의 위험인자로는 다산, 노산, 고혈압, 유전적 요인 등이 있다. 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임신으로 인한 면역체계의 변화와 혈역학적 변화의 상호 관계가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더욱 당혹스러운 질환이지만, 제때 대처하면 자연 회복이 가능하다. 발병 6개월 이내에 심장 기능이 정상화되는 경우가 50% 정도다.
그러나 발병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진단된 경우는 자연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고, 심한 좌심실 기능 저하가 발생한다. 더불어 좌심실 확장기말(좌심실이 가장 이완됐을 때) 구경(지름)이 60㎜ 이상일 정도로 좌심실이 너무 늘어나는 경우 자연 회복 가능성이 떨어진다. 치료 효과가 떨어져 증상이 지속되고 강심제 투여가 필요할 정도까지 가면 심장이식을 고려하기도 한다.
인천세종병원 김경희 심장이식센터장(심장내과)은 "주산기심근병증 환자는 좌심실 수축기 기능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추후 임신을 금해야 한다"며 "수축기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임신 및 분만이 가능해지더라도 임신 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며 심부전 재발 또한 염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