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모두의 첫사랑이자 청순의 아이콘, 그리고 멜로의 여왕 배우 손예진(43)이 현명한 아내, 다정한 엄마로 고귀하고 찬란한 인생 3막을 열게 됐다.
스릴러 범죄 블랙 코미디 영화 '어쩔수가없다'(박찬욱 감독, 모호필름 제작)에서 위기일수록 더 강해지는 만수(이병헌)의 아내 이미리를 연기한 손예진. 그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어쩔수가없다'의 출연 계기부터 작품을 향한 애정을 고백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이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작가의 1997년 발표작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지난 2022년 개봉한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 국가대표급 영화로 손꼽히는 '어쩔수가없다'는 지난달 열린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진출해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됐고 이후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그리고 지난 17일 개막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리고 있다.
'어쩔수가없다'를 향한 뜨거운 관심의 중심엔 손예진의 변신도 빠질 수 없다. 영화 '협상'(18, 이종석 감독) 이후 '어쩔수가없다'로 7년 만에 영화 신작으로 돌아온 손예진은 제지 전문가인 남편 만수의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가세가 기우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대처하는 아내 미리로 변신했다.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미리 그 자체가 된 손예진은 밝고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강단 있는 엄마 모멘트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여 호평을 자아냈다.
이날 손예진은 7년 만에 관객을 만나게 된 소회로 "사실 다른 작품보다 덜 긴장되는 것도 있다. 이번 작품은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 선배의 책임이 막중하지 않을까? 박찬욱 감독이 더 무게감을 가진 작품이다 보니 나는 다른 작품에 비해 편안하게, 또 차분한 마음으로 관객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베니스영화제부터 이 영화가 여러 관객에게 소개됐는데, 아무래도 국제적인 영화제는 씨네필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어떻게 볼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어쩔수가없다'를 보는 분도 있을 것이다. 아무 정보 없이 보는 관객은 어떻게 봐줄지 반응이 궁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22일 열린 VIP 시사회에는 특히 손예진의 남편이자 동료 현빈이 아내의 신작을 응원하기 위해 방문,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손예진은 "어제 남편도 영화를 봤지만 아무래도 우리 편이니까 믿지 않으려고 한다. 어제 바빠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내게 '생각보다 별로'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관계이지 않나? 남편뿐만 아니라 초대한 지인들이 다 좋은 이야기를 해주더라. 그래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믿지 않으려고 한다.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 그래서 더 대중의 반응이 더 궁금하다"며 "남편과는 진지하게 오늘(23일) 집에 돌아가서 영화에 대해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어쩔수가없다'는 손예진에게 7년 만의 신작이기도 하지만 결혼, 그리고 아들 출산으로 인생 첫 휴식기를 가진 뒤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관심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제안으로 '어쩔수가없다'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주는 영향력이 컸다.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서는 미리의 분량이 작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리의 캐릭터가 색깔이 있어보이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솔직하게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아 연기해도 연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배우에겐 이런 캐릭터가 연기하기 더 어렵다. 대사나 상황이 임팩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잔잔한 캐릭터여서 연기하는 게 더 힘들다. 이걸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7년 만의 영화 컴백인데 개인적으로는 연기를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욕심을 뒤로하고서라도 박찬욱 감독과 꼭 한 번 작업하고 싶었고 여기에 이병헌 선배가 출연을 한다는 것도 컸다. 이병헌 선배가 어떻게 연기하는지 옆에서 보고 싶기도 했다."
그는 "물론 배우로서 마음 한켠에는 작품에 대한 불안함과 궁금증이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완전 다른 세계에 살다 보니 그것(육아)에 올인이 돼 차기작을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던 중 박찬욱 감독의 제안을 받았고 이런 영화를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아 복귀를 결정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내게 만수의 여자 버전이 들어왔다면 과거처럼 연기적으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체력이나 물리적인 상황이 힘들어 그 또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미리를 연기해 여유를 가지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으니 복귀작으로 좋은 장점이 된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너무 잘한 선택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작품을 안 했더라면 후회했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손예진은 '어쩔수가없다' 출연 제안을 받은 뒤 현빈과 시나리오 분석에 나섰다고. 그는 "남편이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읽고 '블랙 코미디인 거지?'라며 묻더라. 처음에 내가 연기할 캐릭터가 미리 역할이라는 걸 못 들어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 캐릭터가 미리인지 아라(염혜란)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 많은 부분이 추가되고 바뀌었다. 덕분에 미리 캐릭터가 존재감이 늘어났고 영화 속 댄스 신도 생겼다. 박찬욱 감독이 아주 조금씩 내용을 늘리면서 미리의 존재감을 보여줬다"며 "영화 오프닝에서 만수와 미리가 아들 딸과 함께 마당에서 바베큐를 먹으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는데 그 장면은 내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 만수에게 구두 선물을 받는 장면이었는데, 원래는 테니스화를 선물 받는 것이었지만 댄싱 슈즈가 더 어울릴 것 같아 박찬욱 감독에게 제안했고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곧바로 장면을 바꿨다. 신나게 신발을 신어보는 미리부터 만수에게 콜라를 따라주는 장면까지 이병헌 선배와 나의 즉흥 연기로 완성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손예진은 "재미있는 비하인드도 있다. VIP 시사회에서 절친 (이)민정이가 말해 줬는데, 남편과 친한 임시완 씨가 남편과 민정이에게 '부부가 다른 부부 연기를 보면 어떻냐?'고 물어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남편이 웃으면서 '여자친구가 궁금해 하냐?'며 '연기는 연기'라고 대답했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딥하고 찐한 부부 모먼트를 보여준 게 아니라 진짜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을 연기해서 다들 편안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육아 휴직을 끝낸 뒤 현장으로 복귀하는 솔직한 마음도 손예진답게 털어놨다. 손예진은 "아이를 낳고 아이를 케어하는 기간이 어느 정도 적당할지 세상의 모든 엄마라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특히 우리 직업은 출퇴근 시간도 정확하지 않고 여유가 많이 없다. 육아는 24시간 풀가동 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아기를 낳았을 때는 3년간 엄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했지만 내가 계획했던 그 시간도 못 채웠다. 약 2년 조금 넘게 육아에 올인했는데, 이것보다 더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육아에 매진해서 후회는 없다"며 "'어쩔수가없다' 첫 촬영 나갔을 때 생각이 난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 육아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사실 워킹맘들이 육아 휴직을 끝내고 첫 출근 복귀하는 날 해방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고 하던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첫 촬영을 나가기 전 불안한 마음이 있었고 아들에게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는데 거짓말처럼 문밖을 나가는 순간 '이거였지' 싶더라. 너무 신기한 건 차 안에서 이동시간도 너무 행복했다. 3시간 이동하더라도 '쉴 수 있다' 싶기도 했다. 영화 현장을 즐기고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변한 것 같다. 과거에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이 현장에서 내가 다시 일을 하는 기분을 오롯하게 느끼면서 리프레시하는 기분까지 갖게 됐다. 그래서 행복했다. 연기하는 순간은 물론 힘들지만, 그 고민조차도 오랜만이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고 털어놨다.
당연히 손예진도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었다. 손예진은 "나는 경력 단절이라는 말처럼 아예 일을 못 한다고까지는 생각을 안 했다. 다만 멜로 장르를 많이 했던 배우로서 앞으로 관객과 시청자가 결혼, 출산 후 내가 하는 멜로 연기에 얼마만큼 몰입해서 볼 수 있을지 조금의 노파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나? 요즘에는 예전과 달라져서 장르, 캐릭터의 한계 없이 충분히 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이 쌓이고 할 수 있는 경험치가 늘어서 오히려 더 열린 상태로 연기하게 되고 거리낌 없이 작품을 임하게 되는 좋은 변화도 있다. 또 다른 방향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희애 선배처럼 치정 드라마 '밀회'를 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나? 모든 배우에겐 멜로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나도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사랑 이야기를 안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멜로 연기는 열려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인생 3막을 연 손예진은 "확실히 아이를 낳은 뒤 1부터 10까지 다 변하더라. 내 인생이 다 변했다. 시간도 변했고. 이제는 내가 어떤 여배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매일 유모차 끌고 놀이터가서 아들과 놀아주다 보면 동네 엄마들이 조용히 와서 '너무 팬이다'며 커피 한 잔씩 선물해 주는데, 아마도 그 엄마들이 전혀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가 혼자니까 심심해 할까봐 놀이터를 자주 간다. 친해진 쌍둥이 친구들도 있고 확실히 생활 자체가 달라졌다. 내게 엄마가 첫 번째가 되어버린 것 같고 일이 있어 행복한 엄마가 됐다. 내가 운동도 할 수 있고 무언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가족과 일 덕분인 것 같다. 그러면서 모든 엄마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아마 전 세계 엄마들이 한마음이 아닐까 싶다"며 둘째 계획에 대해서는 "마음은 세 명도 낳는데, 워킹맘으로서 쉽지 않다.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에서 남편과 나의 의견 대립은 없다. 현빈 씨는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다. 서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그래서 서로 이해를 못 하는 부분도 없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출연했고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4일 개봉.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