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길고 긴 터널을 나와 시원하게 내달리는 배우 김민하(30)가 꽃 같은 찬란한 청춘의 아름다움을 정의했다.
tvN 토일드라마 '태풍상사'(장현 극본, 이나정·김동휘 연출)에서 IMF 시대를 살아낸 태풍상사의 영업사원 오미선을 연기한 김민하. 그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태풍상사'의 출연 계기부터 작품과 캐릭터를 향한 애정을 고백했다.
'태풍상사'는 1997년 IMF, 직원도, 돈도, 팔 것도 없는 무역회사의 사장이 되어버린 초보 상사맨 강태풍의 고군분투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위기로 인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던 시기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삶을 멈추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가슴 뜨거운 생존기를 그린 '태풍상사'는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지난달 30일 종영했다.
특히 '태풍상사'에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K-장녀' 오미선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낸 김민하를 향한 호평도 상당했다. 김민하는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섬세한 표정과 감정 표현, 개성 있는 비주얼로 K-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새로운 판로를 열었다. 정직하고 단단한 인물의 결 속에서도 위트와 에너지가 살아 있는 것은 물론 힘든 시대에 맞서 온 얼굴로 감정을 쏟아내는 진한 울림까지 열연을 펼쳤다. 여기에 '태풍상사' 중·후반 강태풍(이준호)과 달달한 로맨스 케미를 더하며 재미를 끌어올렸다.
이날 김민하는 "'태풍상사'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 방영하는 내내 감사했다. 시대적인 부분 때문인지 젊은 세대는 물론 나보다 윗세대 시청자도 많은 공감을 한 것 같다. 엄마, 아빠 세대 시청자들이 '그땐 힘들었지'라는 반응이 많이 나오더라. 그리고 내 나이 또래 친구들, 고민 많은 2030 청춘도 자신의 고민과 투영돼 공감이 많이 되는 것 같더라"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태풍상사'의 메시지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특히 공감됐던 대목은 '지금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없는 것이 아닌, 당장 성과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미선이의 대사였다. 그 메시지가 너무 와닿았고 그래서 '태풍상사'를 꼭 하겠다 마음 먹었다"고 곱씹었다.
그는 "나는 20대가 정말 길고 긴 터널 같았다. 이런 힘든 상황이 언제 끝나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주변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 모든 과정을 항상 지켜봤다. 넘어져도 일어나고를 반복하면서 뒤돌아보면 그러한 풍경이 아름다웠다. 내 경험처럼 '태풍상사'에도 그런 메시지가 녹아져 있었고 나와 같은 미선의 성장기를 녹여내고 싶었다. 미선은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타고나길 따뜻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미선의 따뜻함을 많이 녹여내고 싶었고 비슷한 부분도 있었다. 다만 미선의 칼 같은, 당찬 면모는 내게 없는 부분이어서 부럽기도 했다"고 밝혔다.
길고 긴 터널을 견딘 김민하와 '태풍상사'의 오미선은 많이 닮아 있었다. 김민하는 "미선이라는 캐릭터에 유독 공감이 많이 됐다. 미선이를 통해 나의 20대를 많이 생각했고 실제로 내가 20대 때 썼던 일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20대 때 김민하는 연기를 너무나 원하고 잘하고 싶었다. 미선이가 상사맨이 되고 싶은 꿈을 꾸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그러한 미선이 너무 기특했다. 간절한 만큼 무너졌을 때 너무나 애달파하고 슬퍼하고 또 잘되면 누구보다 기뻐하는 미선의 모습이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며 "물론 지금도 매일 일희일비하게 살고 있지만 20대 때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일희일비가 가장 심했다. 지금은 그때보단 조금 무덤덤해진 것 같기도 해서 그때의 내 모습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그래도 20대의 김민하를 잘 버틴 것 같다. 너무 힘든 내 상황을 인정했다가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너무 힘들더라. 그저 견뎠다. 배우라는 직업이 되고 싶다고 바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막연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다. '나는 소질이 없는 건가?' 자책하기도 했고 자존감도 정말 낮아졌는데 그런 내 과거가 미선에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힘들었던 20대를 딛고 날개를 단 김민하는 기존의 K-드라마에서 보인 여주인공과 결이 다른 매력으로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었다. 김민하는 "사람들 각자마다 고유의 매력과 꿈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내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것을 아예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남들과 비교하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런 비교는 20대 때 끝난 것 같다. 내 모습이 나일 때 가장 예쁜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캐릭터로 연기를 하면 시청자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특히 요즘 시리즈나 드라마 주인공들을 보면 외모가 출중해야 하는 시대가 끝난 것 같다. 어떤 모습이라도 모두가 다 예쁘고 매력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똑같은 시선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나 싶더라"며 "예전에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넌 안 될거야' '그런 것을 안 했으면 좋겠어' '살 안 빼서 안돼' '성형 안 해서 안돼' 등 온통 '안돼'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게 정말 자극제가 됐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정형화된 미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그런 경험치가 쌓여서 단단해진 경우도 있지만 성향 자체가 속으로 삭이려고 하는 편이다.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었다. 미선이가 노련한 상사맨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연기를 보란 듯이 하고 싶었다. '안된다'라는 말 따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항상 다짐했다. '정말 열심히 할 것' '될 때까지 할 것'이라며 버텼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절대 상처주지 말아야지'라는 강박도 생겼다"고 고백했다.
완벽 그 자체였던 강태풍 역의 이준호와 호흡도 언급했다. 김민하는 "너무 좋았고 편했다. 이준호와 촬영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았다. 나보다 훨씬 연예계 선배이지 않나? 뭘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특유의 듬직한 면모가 있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주고 '민하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며 열어줬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준호와 풋풋한 청춘 멜로를 펼친 것에 대해 "최고로 담백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보는 사람들이 봤을 때 간질간질거리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나도 연애할 때 아양을 떨거나 애교를 부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최대한 담백하게 그려내자 다짐했다. 강태풍과 오미선은 20대 청춘들이지 않나? 서로 장난치고 꽁냥꽁냥하는 모습이 예쁘다.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다 보니 방송에서도 편하게 나온 것 같다. 태국 에피소드에서 미선이에게 스킨십을 하려던 태풍이를 밀쳐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도 촬영하면서 웃음이 많이 터졌다. 그 장면은 연기를 하면 할수록 너무 웃기더라. 서로 욕심을 낸 장면이기도 하다. 또 휴가 에피소드가 나온 14회에서는 미역을 드는 태풍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방송에 담긴 장면은 진짜 웃음이 터진 상태 그대로였다. 기본적으로 '태풍상사' 식구들은 모이면 애드리브 잔치다"고 말했다.
'태풍상사'는 이준호, 김민하, 김민석, 권한솔, 이창훈, 김재화 등이 출연했고 장현 작가가 극본을, '쌈, 마이웨이' '좋아하면 울리는' '마인'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이나정 PD가 연출을 맡았다. 지난달 30일 종영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