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제시 린가드가 잉글랜드로 돌아가 '서울의 추억'을 소상하게 공개했다.
린가드는 22일(한국시각)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FC서울에서의 생활과 서울 팬들과의 소통, 신기했던 한국 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놨다.
데이비드 하이트너 가디언 기자는 '전 맨유 선수가 한국의 음식과 문화적 놀라움, 더 성숙해진 느낌과 한국어 배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제하에 '제시 린가드는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꽤 괜찮다고 말한다. 외식할 때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라며 33세 린가드의 2년 서울생활을 소개했다.
'문화적 특이점, 사소한 것만큼이나 큰 것도 있었다'면서 '그중엔 낙지를 먹기 전 눈앞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경험도 포함된다'고 썼다. 린가드는 "음식이 다르다는 건 당연하다. 산낙지도 먹어봤다.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괜찮았다"고 했다. "
린가드는 특히 서울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자신을 알아보고 반기는 반응을 무척 좋아했다. 린가드는 "다들 항상 '오!' 하는 식이었다"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최대한 크게 뜬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흉내냈다. "사람들이 엄청 놀라더라. 그러다 '린가드, 린가드' 하면서 사진을 찍자고 다가온다."
하지만 서울 팬들과의 관계가 언제나 순수한 것만은 아니었다. 린가드는 소위 '버막 사태'의 충격도 공개했다. 홈 5연패와, 이번 시즌에도 발생해선 안될 패배 직후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막고 선 사건을 이야기했다. "팬들이 경기장 밖에서 버스를 한 시간 넘게 막아세우고, 감독이 나와서 그들과 직접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정말 미친 상황이었다. 서울은 한국에서 가장 큰 클럽이니까. 나는 항상 맨유와 비교하는데 홈에선 항상 승리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FC서울의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고별인사를 한 린가드는 고향 워링턴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이후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열려 있다"고 답했다. "유럽,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가디언은 서울에서의 도전과 경험이 린가드를 선수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숙하게 했다는 점을 직시했다. '린가드의 다음 소속팀은 여전히 맹렬한 추진력과 체력을 유지하는 선수를 얻게 될 것'이라면서 '서울에서의 마지막 4경기(12월 10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멜버른 시티전 포함)에서 그는 경기당 11.4~12.4km를 달렸다. 이 중 9~10%는 매우 높은 강도로 소화했는데, 이는 엘리트 수준의 수치'라고 인정했다. 린가드 역시 "지금은 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고, 책임감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첫 시즌 중반 주장 완장을 차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어린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도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적 자체였다. 그 선택의 대담함과 그 선택을 스스로 받아들인 방식이었다.
린가드는 맨유 계약 만료후 1년 계약으로 이적한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2022~2023시즌 말,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다. 후반기 체력 문제로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고,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갈 곳을 찾지 못했다. 6개월간 휴식기를 가졌고, 유럽의 시즌 중반 이적 시기를 기다리며 개인 코치와 훈련하며 컨디션을 유지했다. 이 기간은 또한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2023년 11월 믿고 의지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돌아가신 할머니 댁에서 머물던 때, "그때 FC서울이 내 앞에 나타났다"고 했다.
린가드는 2024년 2월 8일, FC서울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린가드는 "처음엔 서울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맨체스터의 시끄러운 환경에서 벗어나 재출발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맨체스터엔 방해 요소가 많다. 술자리 같은 일에 휘말리기 쉬우니까. 난는 그저 벗어나서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린가드는 이적 초기 부진한 출발을 했다. 서울 FC의 개막 3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했고, 이후 무릎 반월상 연골 수술을 받아 두 달간 결장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6만6704명 수용)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데뷔전에는 5만1670명의 관중이 모였다. 그가 소속된 기간, FC서울 K리그 평균 관중 수는 약 2만5000명이었다. 린가드의 적응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은 그가 2019년과 2020년 초에 겪었던 우울증과 고독감 때문이었다. 고향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적이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의혹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린가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아파트에 살았다. 같은 건물에 있는 한국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소유의 아파트도 있었다. 린가드는 "그가 (당시 토트넘, 이후 LA FC에서) 경기를 하러 나가 있어서 주변에서 본 적은 없지만, 훈련장엔 몇 번 왔기 때문에 거기서 만났다"고 말했다. 린가드는 2024 시즌 26경기 출전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서울이 12개 팀 리그 4위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데 기여했다. 이번 시즌에는 34경기 출전 10골 4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또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6경기에서 3골 3도움을 기록했다. 재도약을 노리는 잠자는 거인 서울은 12개 팀 동부 지역 조에서 2경기를 남기고 5위다. 상위 8개 팀이 16강에 진출한다.
가디언은 '린가드는 서울의 시설에 적잖이 당황한 건 분명하지만 어떤 것에도 불평은 하진 않았다. 훈련장에는 구내식당이 없어 선수들이 직접 점심을 사 먹어야 하고, 드레스룸에는 의자가 없으며, 훈련장과 경기장에 지열 난방 시설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라고 썼다.
"눈이 오거나 얼음이 얼면 훈련을 할 수 없다. 그냥 체육관에서 운동하거나 인조잔디에서 뛰어야 한다. 지난 시즌 마지막 몇 주 동안 추위 때문에 그렇게 해야 했다. 작년에 경기장에서 한 경기도 있었는데, 날씨가 꽁꽁 얼어붙어서 경기장 왼쪽 전체가 얼음판 같았다. 우리는 대부분 오른쪽에서 경기를 해야 했다"고 돌아봤다.
링가드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사람들이었다. 매일 훈련장에 데려다준 FC 서울 통역 담당 기지용씨(Daniel)을 직접 언급했다. "훌륭한 분이었고, 우리는 바로 친해졌다"고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영어를 잘했다. 김기동 감독님은 통역을 통해 저와 대화하셨지만, 두 번째 해에는 영어 단어를 몇 개 익히셨다. 그런데 내 한국어 실력도 꽤 괜찮았다. 룸메이트인 함선우(서울 유스 2005년생 수비수)라는 어린 선수한테 배웠다. 첫 프리시즌 합류했을 때 그가 내 방에 찾아왔다. 영어는 못했지만 내 모자를 써보고 시계를 구경하며 열심히 어울리려 했다. 에너지가 넘치고 분위기도 좋아서 금방 친해졌다. 처음엔 통역사를 통해 대화했지만 그가 조금씩 단어를 익혀갔다. 그는 내가 하는 말에서 작은 단어들을 익혔고 나도 그의 한국어를 익혔다. 서로 그렇게 배웠다.나는 그 덕분에 한국어를, 그는 나를 통해 영어를 배웠다. 결국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둘이서 저녁을 먹으러 갈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린가드는 한국의 '장유유서' 식사 예절에 대한 스토리도 소개했다. "외식할 때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처음 갔을 때 어린 선수 몇 명과 식사했던 게 기억난다. 그들의 문화는 항상 식탁에서 가장 연장자가 먼저 먹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내 음식은 안 나오고 그들의 음식은 나왔는데, 그들은 먹지 않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먼저 먹어. 내 건 곧 나올 거야.' 그들이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음식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더라도 그들은 먼저 자기 음식을 건드릴 수 없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작별의 감정이 북받친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인터뷰도 이어졌다. 린가드의 계약에는 1년 연장 옵션이 있었으나 린가드는 이 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 멜버른 원정 며칠 전 FC서울은 이번 경기가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링가드는 1대1 무승부로 끝난 경기에서 골을 넣고 문워크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했다. 대형 스크린에 떠오른 '우리의 사랑하는 주장'을 기리는 영상, 'FC서울은 영원히 그의 고향이며, 서울은 영원히 린가드를 기억할 것'이라는 메시지에 린가드는 눈물을 흘렸다. 린가드는 "맨유를 떠날 때도 울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FC서울 선수들과 팬들과 맺은 유대감 때문에 이번에도 감정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강력한 레거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