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땡큐 데일'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상황이 됐다. 박수를 쳐줄 수도 없고, 어떻게 마주쳐야 할까.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극적으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의 C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7대2로 승리, 최소 실점률 기준으로 극적 조 2위가 되며 8강에 올라 미국 마이애미행 전세기에 탑승하게 됐다.
일본, 대만에 연달아 패하며 4연속 WBC 1라운드 탈락 위기에 몰린 한국. 살아남을 수 있는 건 호주를 상대로 5대0, 6대1, 7대2 스코어로 승리하는 것 뿐이었다. 2실점 넘게 하면 아무리 많은 득점을 해도 끝이었다. 2점 이내로 주고, 점수차를 벌려야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이번 대회 막강한 경기력을 보여준 호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 타자들은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차곡차곡 점수를 쌓았다. 투수들도 선발 손주영이 1이닝 만에 부상 강판하는 대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희망을 살렸다.
6-1로 앞서다, 8회말 김택연이 통한의 적시타를 허용하며 암운이 드리워졌다.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한국에게는 악몽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9회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발생했다. 선두 김도영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대주자는 박해민. 2번 존스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찬물이 끼얹어지는 듯 했지만, 신은 한국을 버리지 않았다. 이정후가 친 타구가 투수를 맞고 유격수쪽으로 굴절됐다. 호주의 유격수는 KIA 타이거즈가 아시아 쿼터로 뽑은 제리드 데일.
공 속도가 죽으며 데일의 판단이 어려워진 상황. 데일은 2루를 봤지만, 발이 빠른 박해민이 거의 베이스에 도달해있었다. 이를 보고 당황한 데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듯 어설프게 송구를 하다 우익수쪽으로 공을 흘려버렸다. 한국에는 천운. 호주에게는 최악의 실책. 그렇게 1사 1, 3루가 됐고 안현민이 힘들이지 않고 외야 플라이를 만들며 간절했던 7번째 점수를 뽑아냈다. 그리고 한국은 9회말 호주 타선을 막아내며 극적으로 8강행을 확정지었다.
데일은 박찬호(두산)가 떠난 KIA의 유격수 자리를 채워줄 새 선수로 일찍부터 기대를 모았다. 김도영과 함께 WBC에 출전하게 됐고, 서로를 마주하며 싸워야 하는 자체만으로도 화제의 중심이었다.
24일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구장에서 열린 야구 대표팀과 KIA 타이거즈의 평가전. 데일이 숨을 고르고 있다. 오키나와(일본)=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6.02.24/
KIA 입장에서는 한국도 잘하고, 데일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듯. 하지만 데일이 WBC 역사에 남을 실책을 저질러 난감한 상황이 됐다. 한국 야구가 극적으로 살아난 건 다행이지만, 데일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줘야 할 것인가. 우리는 기쁘지만, 데일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통한의 실책이 돼버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결정적 실수를 한 일본의 외야수 GG 사토에게는 '고마워요 GG사토'라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KBO리그에 돌아와 뛰어야 할 데일에게 고맙다고 할 수도 없고 난처한 상황이 돼버렸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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