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승리를 확정 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는 순간, 도쿄돔 마운드는 환호로 가득 찼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손에 쥔 문보경의 미트가 하늘로 날았고, 마운드 주위로 모인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 안으며 격하게 환호했다.
벅찬 감동의 순간, 환호의 중심에서 조금 먼 외야 한복판에 그대로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이가 있었다. 대표팀의 캡틴, 이정후(샌프란시스코)였다.
외야에서 쏟아낸 캡틴의 오열 '정후 형을 구하자'
이정후는 경기 종료 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3개 대회 연속 본선 라운드 탈락이라는 한국 야구의 잔인한 잔혹사를 끊어내야 한다는 주장으로서의 중압감, 그리고 대만전 패배 이후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절박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던 순간.
먼 발치서 이 모습을 본 안현민이 정후 형 구하기에 나섰다. 환호하는 무리 사이를 뚫고 외야를 향해 전력 질주 해 정후 형을 감쌌다. 뒤따라온 선수들이 외야에서 이정후를 둘러싸며 또 하나의 뭉클한 세리머니 대열을 갖췄다. 동료들의 환호와 함께 일어선 이정후의 눈시울은 충분히 붉게 충혈돼 있었다.
"운이 우리 편이었다" 9회초 굴절 타구와 9회말 수비 한걸음
이정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운이 좋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하지만 그 행운조차 그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7-2를 만든 결정적 계기였던 9회초 투수 강습 타구에 대해 그는 "그 타구가 투수 글러브에 맞고 굴절되지 않았다면, 혹은 호주 유격수 실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9회말 슈퍼캐치도 '준비된 자'의 행운이었다. 9회말 윙그로브의 완벽한 2루타성 타구를 멋진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낸 장면은 압권이었다. 안타 확률 8할이 넘는 강한 타구를 쏜살같이 막아낸 이정후는 "타석 전 미리 수비 위치를 우중간 쪽으로 옮겼는데, 그 덕분에 잡을 수 있었다"며 철저한 준비가 행운을 불렀음을 시사했다.
"17년의 한 풀었다" '약속의 땅' 마이애미로…
2009년 준우승 이후 무려 17년 만에 이뤄낸 결선 라운드 진출. 이정후는 "9회 마지막 순간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선배들이 일궈온 한국 야구의 역사를 우리 세대가 다시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특히 마지막 고비에서 1⅔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낸 '젊은 피' 조병현을 치켜세웠다. "압박감이 엄청났을텐데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대견한 후배에게 승리의 공을 돌렸다.
이제 이정후와 대표팀의 시선은 미국 마이애미로 향한다. 이정후는 "우리가 8강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 도미니카공화국 타선은 우주 최강 타자들이 모여있다. 승패를 떠나 동료들이 메이저리그의 환경과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고 즐기며 더 큰 동기부여를 얻길 바란다"며 부담 없는 보너스 게임에서 모일 더 큰 에너지를 기대했다.
'캡틴' 이정후가 이끈 한국대표팀의 집념이 이뤄낸 기적의 성과물. 답답했던 한국 야구의 혈을 뚫고 새로운 지평을 연 도쿄의 기적이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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