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퇴근 본능이 발동한 걸까.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도미니카공화국전 마지막 아웃카운트 순간이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16일(한국시각)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펼쳐진 두 팀간의 경기. 도미니카공화국이 1-2로 뒤진 9회말 2사 3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미국 투수 메이슨 밀러는 헤랄도 페르도모를 상대로 89마일짜리 슬라이더를 뿌렸다. 홈플레이트 아래 쪽으로 떨어지는 궤적이었고, TV 중계에 표출된 스트라이크존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주심은 루킹 스트라이크 아웃을 선언했고,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페르도모는 아쉬운 듯 큰 제스쳐를 취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입장에선 불운을 토할 만한 장면이었다. 페르도모가 볼넷 출루했다면 2사 1, 3루에서 동점 내지 끝내기를 노려볼 수 있었다. 다음 타석에 들어설 선수가 이번 대회 OPS(출루율+장타율) 1.238이었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는 점까지 떠올려 보면, 억울함을 감추지 힘든 순간으로 볼 만했다.
하지만 도미니카공화국의 알버트 푸홀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그 순간에 집중하고 싶진 않다. (판정에 대한) 어떤 것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운명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번 WBC는 메이저리그에서 채택 중인 피치클록과 피치컴을 도입했다. 하지만 올 시즌부터 시작되는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챌린지는 적용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1라운드부터 고개를 갸우뚱 할 만한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이어지자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8강전까지 5경기를 치르면서 총 51득점, 경기당 평균 10득점이 넘는 가공할 타격을 선보였다. 이날 2회말에도 주니오르 카미네로(탬파베이 레이스)가 선제 솔로포를 쏘아 올리며 미국 관중들을 침묵시켰다. 그러나 도미니카공화국은 이후 미국 불펜에 막혀 무득점에 그쳤다. 총 8안타로 미국(7안타 2홈런)보다 많은 안타를 때렸지만, 승부처에서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
MLB닷컴은 '도미니카공화국 타선은 후반 3이닝 동안 마치 한 방에 승부를 걸려는 듯 무리한 스윙을 했다. 앞선 6이닝 동안 단 2개의 삼진에 그쳤으나, 후반 3이닝에는 6개의 삼진을 당했다'며 '득점권에서 9타수 2안타에 그치며 8개의 잔루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푸홀스 감독이 대주자를 활용하지 않은 점도 의문점으로 남았다. 7회말 페르도모의 좌전 안타 때 2루 주자였던 포수 오스틴 웰스(뉴욕 양키스)가 홈에 들어오지 못한 장면 때문이었다. 웰스가 출루한 뒤 발빠른 오닐 크루즈(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대주자로 내보냈다면 동점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는 것. 크루즈는 9회말 2사후 웰스의 대타로 나서 볼넷 출루했다.
이에 대해 푸홀스 감독은 "웰스가 주전 포수이기 때문에 교체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백업 포수 아구스틴 라미레스(마이애미 말린스)가 버티고 있지만, 웰스에게 안방을 맡기는 게 더 안정적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의연한 푸홀스 감독에 비해 미국은 승리하고도 부끄러운 눈치다.
이날 TV 중계를 맡은 폭스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나선 데릭 지터는 "다음 WBC에선 ABS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경기가 끝나는 건 보고 싶지 않다"고 코멘트 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역시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이런 식으로 끝내는 건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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