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韓영화 페르소나가 떠났다"…안성기, 69년 영화 외길 끝내고 영면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라디오 스타' 속 매니저 박민수의 대사中)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였던 영원한 '국민 배우' 안성기가 별이 돼 떠났다. 향년 74세.
안성기의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5일 "안성기가 오늘(5일) 오전 9시 향년 74세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이어 "안성기는 연기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와 함께해 온 배우였다. 그의 연기는 언제나 사람과 삶을 향해 있었고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했다. 특히 안성기는 배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책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선후배 예술인들과 현장을 존중해 온 진정한 의미의 '국민배우'였다"며 "갑작스러운 비보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안성기가 남긴 작품과 정신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故) 안성기의 장례는 고인이 이사장을 맡았던 재단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진행된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배창호 감독,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장례를 진행한다. 더불어 고인과 아티스트컴퍼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배우 이정재, 정우성 등의 영화인들의 운구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안성기는 만 5세의 나이인 지난 1957년 영화 '황혼열차'(김기영 감독)를 통해 데뷔했다. 영화 제작자였던 아버지 안화영과 절친이었던 김기영 감독의 제안으로 아역배우를 시작하게 된 것. 이후 1959년 개봉작 '10대의 반항'(김기영 감독)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렸고 1960년 '하녀'(김기영 감독)에도 출연하며 아역 활동을 이어갔다. 다만 동성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업에 집중, 연기 활동을 중단했고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진학과 군 전역 후 1977년 영화 '병사와 아가씨들'(김기 감독)을 통해 다시 배우 활동을 복귀했다.
이후 안성기의 영화 인생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감독), 1984년 '고래사냥'(배창호 감독), 1990년 '남부군'(정지영 감독), 1993년 '투캅스'(강우석 감독), 1994년 '태백산맥'(임권택 감독), 1998년 '퇴마록'(박광춘 감독),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감독), 2001년 '무사'(김성수 감독), 2003년 '실미도'(강우석 감독), 2006년 '라디오 스타'(이준익 감독), 2007년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 2012년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 2014년 '신의 한 수'(조범구 감독), 2015년 '화장'(임권택 감독), 2019년 '사자'(김주환 감독), 2020년 '종이꽃'(고훈 감독), 2021년 '아들의 이름으로'(이정국 감독), 2022년 '한산: 용의 출현'(김한민 감독), 그리고 유작이 되어버린 2023년 개봉작 '노량: 죽음의 바다'(김한민 감독) 특별출연까지 약 60여년간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영화 최초의 1000만 영화인 '실미도' 뿐만 아니라 저예산 아트버스트 알리기에도 앞장섰던 고인은 스포츠조선과 진행한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인터뷰 당시 "특별한 사명감이 있다기보다는 작품의 완성도에 많은 비중을 두려고 한다. 우리 한국 영화는 저예산 영화가 많이 있는데, 좋은 작품은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대우를 못 받는다고 생각해서 좋은 작품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그렇게 연기를 쭉 해왔다"고 연기 소신을 밝혔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고인의 출세작으로 꼽히는 '남부군'을 통해 지난 1990년 열린 제11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과 인기스타상을, 1992년 열린 제13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2001년 열린 제22회 청룡영화상에서 '무사'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대중적 사랑을 받았던 '라디오 스타'는 고인의 많은 인생작 중 가장 손꼽히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중. 안성기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함께 호흡을 맞춘 박중훈과 2006년 열린 제27회 청룡영화상 최초의 동반 남우주연상 수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열린 제4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2021년에는 국제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 최고의 인물에게 수여되는 브랜드 로레이 어워드(The Brand Laureate Awards) 레전더리상(Legendary Award)을 한국 영화인 최초 수상하며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이밖에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40여차례 수상을 이어가기도 했다.
더불어 한국 영화계 권익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안성기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았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는 물론 마지막까지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통해 귀감이 됐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사를 관통하는 영화계 큰 어른으로 선후배에게 존경을, 대중에겐 믿고 보는 '국민 배우'로 신뢰를 받은 안성기. 이러한 안성기는 지난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 모든 활동을 중단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투병 초기 당시 '과로'로 알려진 안성기의 건강 상태에 대해 무분별한 추측이 쏟아지기도 했으나, 안성기는 2022년 열린 '배창호 감독 특별전' 개막식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 스스로 혈액암을 투병 중인 사실을 고백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전과 달라진 부은 얼굴과 잠긴 목소리, 불편한 거동 등 더이상 투병 사실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개막식 이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혈액암이 발병해 투병 중이다. 항암 치료를 받고 건강이 좀 나아져 외출할 수 있었다"며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져) 가발을 착용 중이다. 고 강수연의 장례 때도 (항암 치료받느라) 늦게 갔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는데, '한산' 무대 인사는 머리가 이래서 못 갔다. 이 머리로 작품을 할 수 없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2023년 4월 열린 제4회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서 전보다 건강을 되찾은 모습으로 다시 한번 대중 앞에 나선 안성기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감사 인사를 드린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시기에 건강 문제가 생겨 한동안 투병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다시 거의 건강을 회복했다"며 "남아있는 내 삶에서 열정을 다해 작은 힘이지만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 신명을 바치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후 그해 열린 고 강수연 추모전 개막식을 비롯해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 제10회 들꽃영화상, 제43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 등에 연이어 참석한 안성기는 조금씩 건강을 되찾은 모습으로 팬들을 안심 시켰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안성기의 비보를 접한 연예계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윤종신은 "오랜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 좋아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추모 글을 남겼고 배철수는 안성기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 "만나면 늘 환하게 웃어 주시던 안성기 형님. 명복을 빕니다"고 슬픔을 삼켰다. 이시언 또한 "어릴적 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항상 존경합니다. 안성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고 애도했다.
한편,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되며,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두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2026-01-05 1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