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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안정환 "U-20월드컵 후배들아 나처럼 후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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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 안정환(41)은 최근 기분좋은 역외도(?)를 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예능 방송인의 스케줄을 잠시 접어두고 천직인 축구에 흠뻑 빠져들었다.

방송인? 축구인? 안정환은 "당연히 축구인이다. 뼛속까지…"라고 단언했다. 이번 축구 외도는 공교롭게도 여행이었다. 자신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여행을 즐겼다면 이번에는 축구인생의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4일 저녁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를 깜짝 방문해 20세이하 월드컵을 준비 중인 20세이하대표팀 후배들에게 격려 강연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때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안정환으로 돌아가 주옥같은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어 6일에는 추억의 부산축구 성지 구덕운동장을 찾았다. 부산 아이파크의 '레전드 데이' 이벤트 주인공으로 초청받아 부산 축구팬들과 황금기 대우 로얄즈 시절의 추억을 공유했다. 환영행사의 하나로 경기장 전광판에 17∼19년 전 골모음 영상이 소개되자 깊은 감회에 젖어드는 표정이었다. 부산과 부천의 K리그 챌린지 11라운드를 본부석에서 끝까지 지켜보며 응원한 안정환은 근래 들어 가장 진지했다. 축구해설가, 예능프로그램에서 입담 좋은 방송인이라 입이 근질거릴 법도 했다. 하지만 중계석이 아닌 관중석에서의 축구인 안정환은 부산의 1대0 승리 후 기립박수를 할 때까지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5월 20일∼6월 11일) 홍보대사이기도 한 안정환.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면서 그는 더욱 바빠지게 됐다.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많아지는 만큼 축구에 대한 예의를 다시 찾아둬야 한다는 게 안정환의 설명이다. 추억의 구덕벌에서 안정환은 U-20월드컵 홍보대사, 방송인으로서 인생 2막 등에 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U-20월드컵이 다가온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자기집에서 하는 게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익숙한 환경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월드컵은 큰 대회다. 내 경험상 스무살 시절의 가장 큰 약점은 심리적인 흔들림이다. 심리가 흔들리면 육체도 흐트러지게 된다. 심리를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2002년 경험으로 비춰볼 때 심리 컨트롤 비법이 있을까.

▶그 때는 첫 번째 국민이 잡아주셨고, 그 다음 감독이 통솔하고, 마지막으로 선수들끼리 잡아주는 등 삼위일체가 잘 됐다. 국민이 잡아주셨다는 의미는 관심과 응원을 말한다.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이 된다. 그런 것들을 부담으로 느끼면 독이 되고 힘을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약이 된다. 즐겨라. 축구선수의 스무살 그 나이에 언제 그런 대회에서 뛰어보겠는가. 평생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기회다.

(안정환은 스무 살 후배들을 언급하면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는 듯 목소리 톤이 시나브로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뭔가 맺힌 게 있는 모양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국가대표 기억이 있지 않나.

▶(아쉬운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19세이하 대표였다. 너무 오래됐기도 하고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당시 원흥재 감독님을 잊을 수 없고 아시아 조별리그 같은 조 일본의 나카타와 경쟁한 게 기억난다. 일본에 밀리는 바람에 20세이하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2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는 후회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패했다는 것에 마음 아파하는 정도로 그친 것 같다. 더 간절하게 죽을 힘을 다해 더 열심히 뛰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도 마음 속에 미련이 남아 있고 가시가 박힌 듯하다.

1994년 아시아 청소년(19세 이하)선수권에서 한국은 조별리그 1승2무1패로 탈락했다. 안정환은 바레인과의 2차전(2대2 무)서 2골을 터뜨렸지만 일본과의 최종전 패배(0대1)로 일본에 출전권을 빼앗겼다.

-U-20월드컵 홍보대사로 더 바빠지겠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고 개막하고 나면 어떤 일을 할지 조직위와 협의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넋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방송 활동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교묘하게 월드컵 홍보를 하는 중이다. 방송 촬영할 때 기차역 같은 곳에 월드컵 홍보 전광판이나 포스터가 게재된 게 보이면 일부러 그 앞에 서서 멘트를 하고 카메라로 꼭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방송 촬영 중에도 기회가 생기면 월드컵이 열린다는 멘트를 넣는다.

(안정환은 축구 해설가이기도 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2015년 호주아시안컵 때 톡톡 튀는 어록 해설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MBC가 이번 월드컵 주관 방송사가 아니어서 그런지 해설 계획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 해설로 팬들과 만날 수 없지만 관중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뛰어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혹시 다른 방송사에서 해설할 기회가 생길 수 있지 않나,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그러면 안 된다. 아직 MBC와 계약하지 않았지만 나는 MBC 해설가다. 다른 곳으로 가면 의리가 아닌 것 같다.

-U-20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신태용 선배에게 조언할 위치는 아닌 것 같고…. 보통 감독에 대해 덕장, 용장이란 표현을 하는 데 신 감독은 정말 유쾌한 감독이다. 나도 여러 유형의 감독을 정말 많이 만나 봤지만 기존에 어떤 유형의 감독보다 특히 장점이 있는 감독이다. 요즘 축구에서 전술 훈련 등은 기본이다. 팀플레이, 많은 훈련량과 기술 연마, 체력단련은 모든 팀이 다 하는 일이다. 여기에 경기력을 좌우하는 요소는 선수들과의 소통, 이해도가 아닐까. 그래서 신 감독의 유쾌함이 좋다.

-방송인, 축구인 어떻게 불리는 게 좋을까,

▶나는 당연히 축구인이다. 뼛속부터 그렇다. 지금 방송을 하는 것은 축구를 하면서 하지 못한 경험을 하고 나름대로 인생을 좀 즐기고 있다고나 할까. 축구선수 출신이라고 계속 축구만 하라는 법은 없는 듯 하다. 나도 나의 인생이 있기 때문에 쉬는 시기도 필요하다. 은퇴한 뒤 지도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른 게 아닐까싶다.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험해보니 방송과 선수 어떤 게 더 힘들까.

▶방송이 힘들기는 하지만 축구가 훨씬 더 힘들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마 내가 축구를 잘 알아서 더 힘든 게 아닐까. 방송은 아직 잘 모르니까 실수를 해도 용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축구는 내가 선수도 했고 잘 알기 때문에 여기서 실수를 하면 부담이 크다.

-최근 A대표팀의 위기설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을 것 같다.

▶국가대표 출신이라 당연히 안타까웠다. 대표팀이라는 게 월드컵 예선같은 긴 일정을 걷다 보면 어차피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근래 한국축구의 아쉬운 점은 최종예선 얼마 남기지 않고 너무 늦게 문제점이 노출된 것 같다. 차라리 초반에 흔들림이 먼저 왔으면 빨리 회복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위기가 너무 늦게 찾아온 감이 있다. 특히 A대표팀과 관련해 감독이 어떠니, 선수가 어떠니 여러 얘기만 나온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다 알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이 문제인지 확실하게 모른다는 게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사가 정확하게 진단하려고 환자에게 문진하는데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거나 의사가 병을 제대로 집어내지 못하는 형국이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해성 수석코치가 합류했다. 우리 대표팀은 첫 번째 변화를 줬다가 잘 안돼서 두 번째 변화를 시도했다. 여기서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 안된다. 그런 면에서 정 수석코치는 충분히 해낼 것이라 믿는다.

-부산에서 축구 외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당연하다는 듯이)아내(이혜원)를 만난 것이다. 프로 신인 때 부산서 스포츠용품 CF를 함께 찍게 되면서 인연이 됐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연애 시절 자주 갔던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고깃집을 찾아갔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너무 아쉬웠다.

-부산과 대표팀의 공격수 후배 이정협에게 조언을 한다면.

▶방송 중계를 할 때 이정협을 관찰한 적은 있고 아직 개인적으로 본 적은 없다. 조언이라면, 그건 직접 만날 기회가 되면 얘기를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게 후배이지만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해줄 얘기도 많다. 기회가 되면 꼭 만나서 전해주겠다. 이정협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도 많지만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얘기해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구덕에서의 추억여행을 마친 안정환은 "부산의 축구열기가 예전같지 않다. 그때는 관중 함성에 귀가 멍할 정도였는데…, U-20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열기가 다시 뜨거워졌을 좋겠다"며 "월드컵 성공을 위해 힘닿는 한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부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