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현재 A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장이 부재 중이다. 지난 14일 카타르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8차전서 2대3으로 진 후폭풍이 거셌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지난 15일 기술위원회를 가진 후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자신의 동반 퇴진을 발표했다.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슈틸리케 감독은 사실상 경질했고, 이용수 위원장은 직을 내려놓았다.
한국 축구의 중요한 두 자리가 빈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바로 대한축구협회장이다. 다름 아닌 정몽규 협회장이다. 그는 14일 카타르전을 현장에서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리고 외국에서 추가 일정을 소화한 후 주말 귀국했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일의 절차는 기술위원장과 A대표팀 감독 선임 순이다. 이용수 위원장 후임이 새 감독을 선임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절차 보다 실질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건 정몽규 회장의 결심이다. 물론 회장이 전횡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그걸 방지하는 차원에서 회장 옆에는 경험이 풍부한 부회장, 전무 등이 포진돼 있다. 그리고 축구 원로 그룹도 있다.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독선적인 의사 결정은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전체적인 후보군과 밑그림은 전부 그려졌다. 이용수 위원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인 의견임을 깔고 '포스트 슈틸리케'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위기관리 능력 풍부한 경험 국내 지도자 월드컵 최종예선 경험 등을 꼽았다. 이 발언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떠나는 위원장이 차기 감독의 조건을 밝히는 게 맞지 않았다" "정몽규 회장이 이용수 위원장에게 어느 정도 언질을 준 것 아니냐" 등의 얘기들이 나왔다.
이용수 위원장이 밝힌 조건은 뒷배경을 차치하고 지금 한국 축구가 처한 중대한 상황을 고려할 때 틀리지 않다. 적어도 한국 축구의 먼 미래가 아닌 남은 두 경기 이란전(8월 31일)과 우즈베키스탄전(9월 5일)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면 이 위원장이 말한 조건들에 부합하는 감독을 뽑는 게 맞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2개월 동안 이란과 우즈벡을 무너트릴 선수 구성과 전술·전략을 세울 수 있는 승부사가 필요하다.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선 위기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하고, 월드컵 최종예선 경험이 있는게 낫다. 당연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으로, 선수 파악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외국인 감독 보다는 토종 지도자가 유리하다.
일부에선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넘어 미래의 한국 축구를 생각하자고 말한다. 그 차원에서 '올드'한 지도자 보다 '젊은' 지도자들에게 기회를 더 주자고 주장한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좀더 강한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선 이번 이란전과 우즈벡전 보다 3~4년 이상을 길게 내다본다는 전제를 깔아야 할 것 같다.
최종 결정은 협회장이 한다. 정몽규 회장이 어디에 포인트를 두느냐에 따라 결정하고 또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심사숙고를 해도 좋고, 절차를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우리나라 축구 현실이 아직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모자라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A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장 역할을 축구팬들의 기대치에 맞게 잘 수행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후보군이 풍부하지 않다. "왜 그런 사람이 없느냐" "축구협회가 돈도 많은데 외국인을 데려와라" "그동안 축구협회는 인재를 안 키우고 뭐 했냐" 등의 목소리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 축구의 빠른 안정을 위해선 빈자리를 버려둔 채 질질 끌 필요가 없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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