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A대표팀 감독(47)은 색깔이 확실하다. 공격축구를 지향하기로 유명한 지도자다. 현역 시절 미드필더 출신답게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를 통한 공격축구가 트레이드 마크다. 그래서 다양한 공격 패턴 플레이를 만들고 이를 그라운드에 적용시킨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겸해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선 '숙적' 일본에 먼저 두 골을 넣고도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 덤비다 내리 세 골을 얻어맞고 역전패했다. 지난 5월 한국에서 펼쳐진 포르투갈과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16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였지만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나왔다가 1대3으로 졌다. 당시에도 신 감독은 당당했다. 그는 "성적을 내기 위해 수비축구를 구사하면 1대0으로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더 성장하려면 강호와 대등하게 맞붙는 것이 더욱 발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태용 축구'는 탄탄한 수비에 기반을 둔 축구다. 2010년 성남 감독 시절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설 때 조병국과 호주 출신 사샤 오그네노브스키가 수비 안정을 가져다 주면서 공격수들이 힘을 낼 수 있게 도왔다. 2011년 FA컵 우승 원동력도 사샤가 지킨 수비력이었다. 무조건적인 공격축구는 있을 수 없었다.
지난 7월 초, 신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도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곳은 수비진이었다. 이후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의 서막을 연 이란전에 내놓은 수비진의 얼굴은 모두 바뀌어 있었다. 김진수(전북)-김영권(광저우 헝다)-김민재(전북)-최철순(전북)으로 구성된 포백 수비라인은 그토록 바라던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음에도 최정예 카드를 내민 이란을 맞아 물 샐 틈 없는 수비력을 과시했다.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괴물 신인' 김민재는 후반 38분 어지러움을 호소해 교체되긴 했지만 상대 선수 퇴장을 유도하는 등 제 몫 이상을 하며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모든 조건이 마련된 상황에서도 월드컵 본선행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 이유가 다름아닌 신 감독의 색깔인 공격 부재 탓이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후반 8분 미드필더 에자톨라히(로스토프)가 퇴장당해 수적 우위 속에서도 답답한 공격 흐름이 이어졌다. 특히 공격에 변화를 줄 수 있고 파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체 타이밍도 늦었다는 혹평이 잇따랐다. 무엇보다 중국이 우즈베키스탄을 홈에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김민재의 교체대상으로 수비수 김주영(허베이 화샤)을 택했다는 부분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상황에서 멀티 능력을 지닌 장현수(FC도쿄)를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중앙 수비수로 내리고 킥력이 좋은 염기훈(수원)과 이근호(강원)를 투입하는 것이 수적 열세에 있던 이란의 벽을 넘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았겠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신 감독은 자신이 공표했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지지 않는 경기'는 했지만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오늘 이기기 위해 준비하고 경기장에 왔다"는 신 감독의 말은 이란과 비기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걸린 '단두대 매치' 우즈벡전. 압박감이야 이루 말할 게 없겠지만 '이기거나 지더라도 '신태용'답게 축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상황은 또 다시 변했다. 3위 시리아가 이란을 꺾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국의 월드컵 본선 자동진출을 위해선 승리가 필요한 건 자명한 사실이다.
역사에 남을 경기에 임하는 신 감독은 후회 없는 한 판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이란전에서 드러난 골 결정력 부재를 자신의 공격축구 철학으로 풀어내야 한다. "한 골 먹으면 두 골 넣어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는 신 감독 특유의 도전 정신과 패기가 우즈벡전에 전술과 전략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주위에선 "신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긍정적 시각으로 보면 신중해졌다. 그러나 부정적 시각으로 볼 때는 소심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위기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다'던 신 감독의 대범함이 '지지 않는 경기'라는 틀 속에 파묻혀버린 느낌이다. 우즈벡전에선 '공격 앞으로'만 외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여우의 꾀'가 녹아 있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향후 4년 운명이 우즈벡전, 벼랑 끝에 설 때까지 왔다는 자체가 부끄럽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A대표팀을 맡은 신 감독은 또 다시 커리어 하이를 찍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자신의 스타일을 소신껏, 그리고 마음껏 그라운드에서 쏟아붓기 바란다. 그렇게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짓길 기대한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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