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긴요 뭘…그냥 밥값만 하고 있어요."
최근 KIA 타이거즈 4번 타자 최형우에게 칭찬의 말을 건낼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이다. 그는 홈런을 쳐도, 타점을 쓸어담아도 늘 '겸손 모드'를 유지한다. 이 말을 들을 때 가끔은 '도대체 최형우는 얼마나 비싼 밥을 먹는걸까'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곤 한다. 물론 그의 '밥값'이라는 게 실제 식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최형우가 이런 말을 하는 건 2016년 겨울, 100억원 FA로 KIA 유니폼을 입은 것에 관한 책임감 때문이다. 그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줘 팀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이적 첫 해인 지난해에는 타율 3할4푼2리에 26홈런 120타점으로 팀의 통합 우승에 기여해 '혜자(가성비가 뛰어나다는 뜻의 인터넷 속어) FA'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시즌 초반부터 뜨거운 타격감을 유지하며 4번 타자의 역할을 100% 해내고 있다. 최형우는 7일까지 무려 타율 4할(45타수 18안타)을 찍었다. 여기에 3홈런 8타점 10득점을 기록했다. 규정 타석(37타석)을 채운 팀내 타자 중 타율과 홈런 득점은 2위, 타점은 공동 4위다. 리그 전체로 범위를 확대하면 최다안타 2위에 타율과 출루율(0.481)6위, 득점 7위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올해 타점보다 득점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4번 타자로 고타율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득점이 타점보다 더 많은 건 최형우가 올해 자신의 역할에 새로운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최형우는 "타자라면 누구나 타점에 욕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올해 타점에 굳이 욕심을 내지 않으려 한다. 우리 팀에는 나 말고도 결정타를 날려줄 선수가 많다. 내 뒤에 나오는 나지완도 매우 뛰어난 타자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가능한 한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출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최형우가 타점 찬스를 그냥 보내겠다는 건 아니다. 기회가 오면 그 역시 언제든 결정타를 날릴 수 있다. 대신 상대 투수가 까다로운 승부를 걸어올 때 거기에 말려들지 않고 볼넷으로라도 걸어나가 타점 찬스를 뒤로 이어가겠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최형우는 현재 팀내에서 가장 많은 7개의 볼넷을 골라냈다. 반면 삼진은 6개 밖에 되지 않는다. 타석에서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뜻이다. 혼자 주목받는 것보다 팀 전체가 잘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만든 변화라 할 수 있다. '팀을 살리는 4번 타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 최형우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 때 개인 통산 1300경기 출장과 1500안타 기록을 동시에 달성했다. 그간 최형우가 꾸준하고 성실하게 잘 해왔다는 징표다. 그는 좀 더 비싼 밥을 먹어도 된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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