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아쉬워하길래, 세리머니를 안 했습니다."
'제왕'이라는 칭호는 단순히 기량이 세계 최고라고 해서 붙일 수 없다. 그에 걸맞은 품격과 위엄을 갖춰야 한다. 위기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 대범함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배려심이 필수다. 예를 들자면, 아쉬운 패배 앞에 눈물을 흘리는 상대를 위해 기쁨의 표현을 안으로 누르는 것 등이다.
그런 이유로 이대훈(26·대전체육회)이 명실상부 '태권 제왕'이라고 불릴 만 하다. 실력과 품격 면에서 만인의 존경과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대훈은 23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태권도 겨루기 남자 68㎏이하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전에서 바크시칼호리 아미르모하메드(이란)를 상대로 12대10으로 역전승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사상 첫 3연패를 달성했다.
그런데 이 승리 후 이대훈은 별다른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환한 웃음만 머금은 채 담담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경기 후 만난 이대훈은 "무척 어려운 경기였다. 이겨서 기분이 좋은데,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워낙 이란 선수가 잘 했다"면서 "예전에 내가 진 적도 있던 실력자다. 그 선수가 너무나 아쉬워하길래 별다른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랬다. 이대훈은 감격의 순간에서도 약자의 서러운 마음을 살폈던 것이다. 실제로 이 경기를 마친 뒤 아미르모하메드는 코치 앞에 꿇어 앉은 채 펑펑 울었다. 헤드 기어를 벗은 채 흐느껴 우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가 이처럼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건 눈 앞에서 승리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날 아미르모하메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뻔했다. 1라운드 초반 돌려차기와 내려찍기를 이대훈의 몸통에 집어넣으며 4-0으로 앞서나갔다. 이대훈은 1라운드에서 지르기로 1점만 얻었을 뿐 좀처럼 경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했다. 이대훈이 "무척 어려운 경기였다"고 한건 엄살이 아니다.
그러나 2라운드 중반 이후 이대훈의 기세가 되살아났다. 차근차근 점수차를 좁혀나간 이대훈은 3라운드 초반 정권 지르기로 7-7 동점에 성공했다. 이어 종료 1분15초 전 헤드킥에 성공하며 10-7로 전세를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아미르모하메드는 마지막 1분여를 버티지 못하고 패한 것이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한 이유다.
진 상대의 슬픔을 헤아리는 품격을 보여준 이대훈은 "오늘 발차기로 체력을 소모하기 보다는 주먹을 지르며 후반 역습을 노렸다"면서 "3연패를 떠나 아시안게임 우승 자체가 기쁘다"면서 "1등도 많이 하고, 진 적도 있지만 단점을 보완해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그랑프리나 선발전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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