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는 남 탓 하면 안된다.
고구마 같은 답답한 타선, 어처구니 없는 수비도 때론 겪는다. 하지만 원망하며 흥분지수를 높이면 결국 자기만 손해다. 밸런스가 와르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두산 좌완 선발 유희관(33)이 투수의 자세를 제대로 보여줬다.
유희관은 16일 잠실 삼성전에 선발 등판, 9이닝 5피안타 1사구 4삼진 1실점의 눈부신 호투로 팀의 4대1 승리를 이끌었다. 최고 구속 133㎞. 완급조절과 코너워크의 환상적 조합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하지만 경기 후 유희관은 완투승의 공로를 포수 박세혁에게 돌렸다.
"세혁이가 사인 잘 내줘서 믿고 갈 수 있었습니다. 제 공이 몰리면 장타를 맞기 때문에 세혁이가 불안할 거에요.(웃음) 모든 공을 낮고, 세게 던지라고 조언해주죠. 동생이지만 믿고 따라요."
박세혁은 경기 후 "저렇게 잘 던질 줄은 몰랐다. 정말 코너코너에 타자들의 배트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공"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신인투수 원태인과 팽팽한 선발 대결이 이뤄졌다. 중간에 아쉬운 수비도 있었다. 1-1이던 5회초 2사에 박계범의 1루쪽 파울 플라이를 1루수 오재일이 잡지 못했다. 하지만 유희관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아쉬운 표정도 없었다. 덤덤하게 3구 만에 박계범을 범타 처리했다.
동점이던 6회초 위기가 찾아왔다. 선두 타자 박해민의 타구를 2루수 류지혁이 백핸드로 잡으려 했으나 중전 안타를 내주고 말았다. 수비 잘하는 류지혁이라 처리할 수 있었던 타구. 살짝 아쉬운 수비로 1회 이후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지만 유희관은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력 있는 견제로 박해민을 2루에서 잡아내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유희관 특유의 센스와 순발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동점 상황에 발 빠른 주자라 2루 보내면 역전을 당할 수 있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제 능력 보다 견제 타이밍에 잘 이뤄진 것 같아요. 그 위기를 벗어난 게 9회까지 던질 수 있었던 비결이었죠."
유희관은 어느덧 마음 넉넉한 베테랑이 됐다. '수비 탓'은 커녕 오히려 이닝이 끝날 때마다 동료 야수들을 기다리며 수비 헌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일일이 전하기도 했다.
"그거(수비 실수)는 신경 안 쓰려 많이 했어요. 사실 예전에는 (아쉬움을 표현해) 감독님 한테 혼나기도 했어요. 이제 저도 중고참이고 그런게 좋게 보면 승부욕이지만, 또 안 좋게 보면 이기적인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실수해도 박수 쳐주고, 앞으로는 팀을 위해 생각하려고 하고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이제 저도 야구 외적인 걸 보여줘야 할 위치니까요."
20일 광주 KIA전 이후 726일 만에 완투승을 했지만 유희관은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한다.
"제가 어느덧 선발 중 최고참이 됐더라고요. 얼굴만 보면 조쉬(린드블럼)가 더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제 나이가 더 많거든요.(웃음) 제가 구심점 역할 잘해서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유희관이 보여준 팀과 동료에 대한 존중과 배려, 팀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요소다. 외국인과 토종의 완벽한 조화 속에 두산 선발진이 점점 더 극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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