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빈이 누구야? 테스트생이야?"
지난달 전남 고흥 전지훈련 중 일어난 일이다. 안산 그리너스 김길식 감독(42)은 선수단 미팅 시간에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이승빈?" 그때 누군가 말했단다. "(이)희성이가 승빈이로 개명한 겁니다."
이승빈은 "감독님께는 따로 말씀을 안 드렸다. 그날 처음 아셨던 것 같다. 왜 이름을 바꿨냐고 물어보시길래, 이름이 안 좋다고 해서 바꿨다고 말씀드렸다"며 "여기 선수들은 지금 이희성과 이승빈을 섞어가며 부른다. 와이프도 아직 어색해하는 것 같다. 월급 통장에 찍힌 이름을 보면서 이승빈이 누군데 돈을 보낸걸까 생각을 했다고 한다"며 웃었다.
이희성은 울산 현대 유망주로 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한국나이 서른둘, 프로 데뷔 9년차 선수가 왜 이제야 이름을 바꾼걸까.
이희성, 아니 이승빈은 "첫째 아들 이름을 지으려고 철학원에 갔다. 그곳에서 제 이름을 묻더니 '5행 중 물의 기운이 부족하다. 부르기에도 안 좋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2018년과 2019년에 연속해서 후반기에 폼이 떨어졌다. 영 신경이 쓰여서 다른 철학원에 가봤더니 그곳에서도 이름이 안 좋다고 하여 결국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7개 이름을 뽑아주더라. 후보 중 '이다호'도 있었다. 그런데 아들 이름(수호)과 비슷해서 '패스'했다. 승빈이로 고른 건 뜻이 좋아서다. 이룰 승에 나라이름 빈자인데, 나라에 크게 이름이 난다는 뜻이다. 물의 기운도 보충해준다고 했다. 빈으로 끝나는 이름을 지닌 배우 중에 잘생긴 분들이 많지 않나. 잘생겼다는 느낌을 준다"라며 만족해했다.
이승빈은 개명할 정도로 올 시즌이 간절하다. 정든 울산을 떠나 2018년 안산에 입단한 이승빈은 지난 3시즌 17경기-18경기-17경기를 뛰었다. 한 시즌을 풀로 소화한 적이 없다. 앞서 언급한대로 후반기에 접어들어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있었다. 올 시즌도 김선우 등과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쳐야 한다.
울산 시절을 돌아본 이승빈은 "축구를 관둬야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뛰지 못하고, 이적도 쉽지 않았다. 뛰기 위해 울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때 버틴 게 지금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김)영광이형과 친구인 (김)승규에게 배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둘째가 태어나고 팀내 3번째 고참이 되면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쉽게 다가서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라커룸에서 말도 많이 하려고 한다. 힘든 훈련을 이겨낸 뒤 지금은 몸이 많이 올라왔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 감독은 "이름까지 바꾸려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아마 부상 등의 이유로 커리어가 잘 안 풀리는 다른 선수들도 개명을 고민할지 모르겠다. 그땐 누가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한편, 이승빈 이전에도 많은 축구인이 프로 데뷔 후 개명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0명이 이름을 바꿨다. 김도엽(구 김인한) 김성주(구 김영근) 김주원(구 김준수) 박배종(구 박형순) 등이다.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정성룡은 2004년 포항 시절 '용'을 '룡'으로 바꿨다. 올해 광주FC 감독을 맡은 김호영 감독은 개명 전 김용갑으로 활동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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