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벤치가 아끼고 아껴쓰는 투수가 있다.
삼성 라이온즈 베테랑 투수 김대우(33).
그는 '선발투수의 119' 같은 존재다. 선발투수에게 빨간불이 켜지면 어김 없이 김대우의 시간이다.
절친한 선배 오승환이 마지막 불을 끄는 최후의 소방수라면, 김대우는 선발투수의 불을 끄는 중간 소방수다.
그가 마운드에 오르면 요동치던 경기가 잠잠해진다. 크게 질 수 있었던 경기가 해볼 만한 경기로 바뀐다.
만능 조커이자 게임 체인저. 선발로도 충분한 실력이지만 팀을 위해서는 지금의 역할이 최선이다.
최채흥의 이탈 등으로 선발진에 불안 요소가 있는 삼성. 뒤를 받치는 김대우의 묵직한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물론 팀에 좋은 일이 꼭 개인에게도 좋은 일인건 아니다.
사실 김대우의 역할은 '궂은 일'이다. 잘해도 크게 빛이 나지 않는 일,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승리도, 홀드도, 세이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선발이 언제 흔들릴 지 모르니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가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사령탑의 마음에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어려운 시점에 불펜에서 긴 이닝을 소화해 주는 유일한 역할입니다. 마당쇠 같이 혜택 없는 보직인데 기꺼이 희생하면서 너무 잘해주고 있는 고마운 선수죠." 허삼영 감독의 이야기다.
기록 없는 무명의 역할.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저는 삼성의 팀원이고 한명의 불펜 투수이기도 합니다. 어떤 보직이든 정말 상관 없고, 그저 팀이 이기는 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대우는 지난 시즌 그야말로 전천후 카드였다.
주축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 속에 시도 때도 없이 임시 선발과 롱 릴리프를 오가면서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다. 연봉 34.8% 인상은 온갖 궂은 일 처리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노하우를 깨우쳤다. 올시즌 2경기에서 4⅓이닝 무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선보이고 있는 비결.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 됐다고 할까요. 작년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배운 부분도 있고, 경기에서 승부를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도 있어요.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기려고 공부를 정말 많이 하기도 했고요. 사실 대단한 구종은 없어요. 다만, 타자에게 좋은 타이밍을 안내주기 위한 템포와 밸런스,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임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에는 개인의 희생이 따르는 법. 고충이 없을리 없다.
"솔직히 어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쉬운 보직은 아닌 것 같아요. 갑자기 경기에 나가야 하고, 미리 30분 전에 준비해놔야 하고요. 나름 제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은 이런거죠. '내가 아니면 안돼', '나니까 이런 역할을 하고 있어' 이렇게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웃음)"
개인 성적을 버리고 오직 팀을 위해 사는 남자. 그의 올 시즌 목표가 궁금해졌다.
"다른 건 없어요. 팀이 가을야구 가는거죠. 저는 그저 묵묵하게 제 일을 하다가 나중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만 들으면 됩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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