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부러진 배트에 맞고도 벌떡 이어섰던 NC 루친스키.
물리적 타격은 에이스를 흔들지 못했다. 하지만 심리적 타격은 이겨내지 못했다.
루친스키가 볼 판정에 하나에 무너졌다.
루친스키는 2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KT위즈와의 시즌 3차전에 선발 등판, 5이닝 8안타 3볼넷, 폭투와 보크 등으로 8실점(4자책) 했다. 8실점은 KBO 3년 차 외인 루친스키의 1경기 최다 타이기록이다.
앞선 3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각 1실점 씩만 내주며 2승무패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중이었던 짠물 투수.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루친스키에게는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긴 하루였다.
0-0이던 2회초, 가슴을 쓸어내린 장면이 발생했다. 선두타자 배정태의 부러진 배트에 허리쪽을 강타당했다. 마운드 아래 그대로 쓰러졌다. 그라운드와 벤치 모두 깜짝 놀랐다. 루친스키 아내 쉐리단은 관중석에서 놀란 표정으로 쓰러진 남편을 바라봤다. 모두가 마운드로 모였다.
하지만 루친스키는 오래 누워있지 않았다. 트레이너의 도움 속에 일어서 벤치로 향했다. 마운드로 달려온 타자 배정대의 등을 두드리며 안심시키는 모습도 포착됐다. 마운드에서 내려와 타박 부위를 면밀하게 살폈다. 몸에 배트 자국이 남았지만 다행히 부러진 배트 끝 날카로운 쪽이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다.
체크를 마친 뒤 계속 던질 만한 상태라고 판단한 루친스키가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힘차게 마운드로 돌아왔다. 후속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닝을 마치고 내려오는 남편을 향해 관중석 아내도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다음 이닝이었다. 3회초가 악몽이 됐다.
선두타자 신본기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심우준의 희생번트 타구 때 2루수 실책으로 무사 1,2루.
텐션이 높아진 시점. 루친스키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용호의 버스터와 번트시도가 잇달아 실패로 돌아갔다. 타자의 부담이 더 커진 투수 우위의 상황.
풀카운트에서 루친스키는 회심의 변화구로 의표를 찔렀다. 타자 몸에서 먼 쪽에서 바깥쪽 존 높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떨어진 커브. 조용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주심의 손도 올라가지 않았다. 무사 만루가 되는 볼넷이었다.
루친스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양 팔을 들어올렸다. 이동욱 감독도 덕아웃 바를 손으로 치며 볼 판정에 크게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 주심은 높은 쪽 스트라이크 판정에 인색했다. 하지만 루친스키는 스트라이크라 확신을 했다. 판정과 확신이 충돌했다. 투수의 심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김민혁의 2타점 적시타→강백호의 희생플라이→알몬테의 안타가 잇달아 터졌다. 마음이 흔들린 탓이었다. 실제 루친스키는 알몬테 타석 때도 손을 들어 주심에게 '이 볼도 높으냐'는 항의성 확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3실점.
코칭스태프가 급히 올라와 격해진 루친스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때가 늦었다. 배정대를 삼진 처리했지만 황재균에게 다시 적시 2루타를 허용했다. 이홍구의 빗맞은 2타점 적시타가 이어지며 3회에만 무려 6실점 했다.
끝이 아니었다. 루친스키는 4회에도 1사 후 조용호에게 또 한번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줬다. 또 다시 주심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올리는 항의성 확인 제스처를 취했다. 김민혁에게 안타를 허용한 루친스키는 강백호 타석 때 폭투에 이어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던 보크까지 범하며 7점 째를 내줬다. KBO 데뷔 첫 보크. 심리적 동요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동욱 감독이 나와 강하게 항의하다 수석코치의 만류로 돌아섰다. 루친스키는 2사 후 알몬테에게 적시타로 8실점 째를 내주고 말았다.
부러진 배트에 강하게 맞는 물리적 아픔도 이겨낸 불굴의 에이스. 볼 판정 하나가 던진 마음의 파문 만큼은 가라앉히지 못했다. 에이스의 대량실점 속에 결국 팀도 5대11 대패를 피하지 못했다.
올 시즌 들어 조금 더 타이트 해진 스트라이크 콜 판정. 그 사이 리그 전체 투수들의 볼넷도 우려스러울 만큼 늘어나고 있다. 콜 판정의 정확성 여부를 떠나 투수에게 심판 판정은 환경이다. 경기 중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투수만 손해다. 올 시즌 최악의 경기.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던 NC 에이스에게는 수난의 하루였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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