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어느 순간부터 잉글랜드 클럽 첼시의 선수 영입 '오피셜' 사진에 한 중년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복붙'(복사 붙여넣기)을 한 것처럼 똑같이 인자한 표정을 짓는 그의 이름은 마리나 그라노프스카이아(47).
그라노프스카이아와 관련해 대중에 알려진 정보는 나이, 러시아계 캐나다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수석 보좌관, 현 첼시 경영이사 겸 디렉터라는 것 정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하지 않고, 공개된 장소에선 쉽게 입을 열지 않아 그의 사생활과 관련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비밀요원과도 같은 행보를 이어온 그라노프스카이아는 현재 첼시의 실세로 자리잡았다. 로만 구단주가 2003년 첼시를 인수할 때만해도 조력자에 지나지 않았던 그라노프스카이아는 서서히 구단 내 입지를 넓혀나갔다. 2009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며 유럽축구계를 떠들석하게 만든 팀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와 계약을 유지하고, 수뇌부와 마찰 끝에 팀을 떠났던 조제 무리뉴 감독을 2013년 복귀시켜야 한다는 과감한 충언으로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마음을 얻었다.
승승장구했다. 2013년 구단 이사로 승진했고, 2017년 마이클 에메날로 디렉터가 사임한 뒤로는 구단 재정과 선수단 영입을 아우르는 막강한 스포츠 디렉터 역할을 맡았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쯤이라고 보면 된다. 2017년 시즌당 6600만 유로(현재환율 약 915억원)에 2032년까지 나이키와 초대형 스폰서 계약을 맺고, 2019년 계약이 1년 남은 에당 아자르를 이적료 1억 유로(약 1386억원)를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넘기는 수완으로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그라노프스카이아는 지난시즌 티모 베르너, 하킴 지예흐, 카이 하베르츠 등 영입을 주도하고 토마스 투헬 감독을 프랭크 램파드 감독 후임으로 선임해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뒷받침했다. 이번여름에는 클럽레코드인 9750만 파운드(약 1586억원)에 로멜루 루카쿠를 인터 밀란에서 영입하며 투헬 감독과 첼시 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돈쭐'을 내듯 선수만 마구잡이로 영입하지 않고 알바로 모라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현 유벤투스 임대), 마리오 파살리치(아탈란타), 피카요 토모리(AC 밀란), 마르크 구에히(크리스털 팰리스) 등을 내보내며 충분한 금액의 이적료도 벌고 있다. 첼시는 이웃클럽 맨시티와 달리 재정적 페어플레이(FFP)와 관련된 이슈에 휩쓸리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 7월28일 기준, 첼시는 2011~2012시즌 이후 맨시티, 바르셀로나에 이어 3번째로 많은 10억4700만 유로(약 1조4506억원)를 이적료로 지출했다. 같은기간 이적료 수익도 3번째로 많은 10억 유로(약 1조3855억원)다.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고 있다. 1년 중 대부분을 러시아에 머무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 경영을 그라노프스카이아에게 맡길 수 있는 이유다. 지난 6월 사임한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뮌헨 CEO는 대놓고 그라노프스카이아의 경영 능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 2018년, 그라노프스카이아를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스포츠인 5위에 올려놓았다.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는 디렉터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라노프스카이아를 영국 최초의 여총리인 마가렛 대처에 빗대 '철의 여인'이란 애칭을 다는 매체가 생겨났다. 일부팬들은 스탬퍼드 브리지 앞에 그라노프스카이아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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