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팀 미드필더 황인범(25·루빈 카잔)은 시즌을 앞두고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던 지난 6월 '선배' 기성용(32·FC서울)을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점심 식사 중 자연스럽게 월드컵 최종예선 이야기가 나왔다. 국가대표 데뷔 후 아직 최종예선을 경험하지 않은 황인범을 향해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가입자인 기성용이 해준 말. "최종예선은 정말 쉽지 않아. 특히 이란 원정은. 다른 경기도 진짜 힘들거야"였다.
벤투호는 지난 9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 1, 2차전에서 이 말을 실감했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이라크를 상대로 0대0으로 비긴 뒤 레바논을 상대로 1대0 신승을 거뒀다. 승점 4점, A조 2위에 머문 대표팀은 10월 더 큰 상대를 만난다. 7일 안산에서 시리아와 3차전을 치르는 한국은 곧바로 이란 원정길에 올라 12일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최대 난적' 이란과 격돌한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경기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테헤란 원정에서 약한 면모를 보였다. 1974년 첫 원정 경기를 시작으로 2016년 10월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총 7번 방문해 2무5패를 기록했다. 직접 아자디스타디움을 찾았던 기성용이 "쉽지 않다"고 말한 이유다. 가장 최근 승점을 딴 경기는 2009년 2월에 열린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으로, 박지성 현 전북 현대 클럽 어드바이저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덕에 살아남았다.
기자도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아자디스타디움을 직접 찾아 그 위세를 실감한 적이 있다. 2012년 10월, 당시 최강희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의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원정경기를 현장취재했다. 주변에선 중동국가란 이유로 이란에 가는 것 자체를 우려했지만, 테헤란 도시 자체는 평화로웠다. 날씨도 선선해 지내기엔 별 무리가 없었다.
컨디션이 중요한 선수단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자디스타디움은 해발 1273m에 위치했다. 5시간30분이나 되는 시차에다 고지대 적응까지 해야 한다. 당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등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있었다. 잘 버티던 한국은 후반 27분 네쿠남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0대1 패했다. 실점한 순간, 옆 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음이 치솟았다. 진 것도 분한데, 라커룸으로 가는 도중 한국 선수들을 향해 음료병이 날아들었다. 선수들 입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는 원정"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자디 지옥'을 경험한 선수가 현재 선수단 내에 많지 않다는 점은 대표팀의 고민거리다. 가장 최근 테헤란 원정경기에 다녀온 선수 중 이번 원정에 동행하는 이는 손흥민(토트넘) 정우영(알사드) 이재성(마인츠) 홍 철(울산) 김승규(가시와 레이솔) 정도다. 대다수가 이란 원정은 처음이다. 보다 꼼꼼한 선수단 컨디션과 멘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순간, 제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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