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아버지의 손을 떠난 상패가 아들의 손에 안착했다. 마스크 때문에 입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만 봐도 넘실거리는 기쁨을 눈치채기엔 충분했다.
이정후는 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제9회 블루베리NFT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한은회)' 행사에서 '최고의선수'상을 수상했다. 이종범 한국은퇴선수협회(한은협) 부회장과 함께 '부자 시상'의 명장면을 연출했다.
야구선수의 아들이 야구를 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위대한 선수의 아들이 아버지만큼,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정후는 그 드문 예가 될지도 모를 천재 타자다.
이종범은 KBO리그 역대 유격수 계보의 중심이다. 1993년 해태에서 데뷔한 이래 일본 진출 전까지의 5년은 전설 그자체였다. KBO 한 시즌 최다도루(84개) 등 탁월한 주루 능력 외에도 운동능력이 넘치는 유격수, 양준혁(전 삼성 라이온즈)을 제외하고 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거포였다. 5년간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1994년 타율 3할9푼3리 196안타 84도루, 1997년 타율 3할2푼4리 30홈런 64도루의 기록은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다.
김응룡 감독의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란 말이 널리 회자되는 이유다. 2002 아시안게임과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주장으로 대표팀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갖췄다.
'이종범과 그 아들'이 '이정후와 그 아빠'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정후는 2017년 프로 데뷔와 함께 9년간 이어져온 '중고 신인상'의 흐름을 깨고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늘씬한 기럭지와 경쾌한 몸놀림, 준수한 외모까지 갖춘 KBO 최고의 스타다.
5년간 통산 타율이 3할4푼1리에 달할 만큼 날카로운 타격이 돋보인다. KBO리그 만 21세 이하 최다 안타 부문에서 강백호(462개)에 앞선 역대 1위(535개) 기록 보유자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속팀의 상징이자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
올시즌 타율 3할6푼1리로 타격 1위에 올랐다. 1994년 타격왕을 차지한 아버지에 이어 세계 최초 '부자(父子) 타격왕'의 탄생이다. 데뷔 첫 사이클링 히트(10월 25일), 최연소 800안타, 5년 연속 두자릿수 도루의 기쁨도 누린 해다.
이날 시상식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묻는 질문에 "멋진 플레이는 오로지 내 힘이다. 아버지한테 배운적 없다"고 답하는가 하면, "아버지에게 상을 받는 건 전에도 있었던 일이라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등 좌중을 웃기는 마이크웍까지 갖췄다.
시상식이 끝난 뒤 만난 이정후는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어 한층 뜻깊은 자리"라며 특별한 만족감을 표했다.
청담=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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