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 대표팀 사령탑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스승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 활약한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구리야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그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니혼햄 감독 10년 동안 두 번의 퍼시픽리그 우승과 한 번의 재팬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21년 11월 일본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를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켜보며 자질을 알아봤고, 성장과 성공을 목격한 인물이다. 오타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이번 WBC에서도 오타니에게 투타에서 중책을 맡긴다는 계획이다.
구리야마 감독은 최근 미국의 한 매체에 오타니를 처음 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줘 주목을 끈다.
그는 저스틴 벌랜더의 동생이자 폭스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벤 벌랜더와의 인터뷰에서 "오타니 투구를 처음 본 건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 직전에 우연한 기회였다. 어떤 경기였는데, 오타니가 상대팀 투수였다. 홈플레이트 뒤에서 그가 던지는 걸 봤는데 당시 일본 최고의 투수는 다르빗슈 유였다. 오타니의 투구에서 다르빗슈의 공과 같은 궤적과 스피드가 보이더라. 정말 놀랐다"고 밝혔다.
구리야마 감독이 회상한 사연은 오타니가 이와테현 하나마키히가시 고교 1학년 때인 2010년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구리야마 감독은 해설위원 및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오타니는 2013년 전체 1순위로 니혼햄에 입단하면서 구리야마 감독과 본격적인 사제의 연을 맺게 된다.
당시 니혼햄 에이스였던 다르빗슈는 그해 최고 156㎞ 강속구와 스플리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을 앞세워 12승8패, 평균자책점 1.78, 222탈삼진을 마크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오타니가 니혼햄에 입단했을 때 다르빗슈는 이미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상태였다. 오타니는 니혼햄에서 160㎞의 이상의 직구를 자유자재로 뿌리며 다르빗슈를 능가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구리야마 감독은 "프로에 들어와서 투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타자로서도 곧바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오타니의 고교 시절 타격 장면도 떠올렸다.
"나는 내 눈으로 본 것을 믿는다. 그가 고교 1학년 때, 고시엔대회에서 좌측으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쳤는데 굉장히 강하게 날아가 펜스를 강타했다. 얼마나 강했는지 펜스를 맞고도 공에 힘이 남아 더 날아가더라. 반대편으로 그렇게 강한 타구를 날린 타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의 타격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비로소 믿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투타 겸업의 자질을 과시했고, 구리야마 감독은 그걸 알아봤다는 얘기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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