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첫 해 파이널A 매직' 쓴 정경호 감독, 시간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강원FC가 파이널A행 막차를 탔다.
강원은 18일 대구iM뱅크PARK에서 열린 대구FC와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33라운드에서 2대2로 비겼다. 승점 1을 추가한 강원은 승점 44(11승11무11패)로 FC안양, 광주FC(이상 승점 42)를 따돌리고 6위에 올랐다. 지난 시즌에 이어 2시즌 연속 파이널A 진출에 성공했다. 강원이 2시즌 연속으로 파이널A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보 사령탑' 정경호 감독의 지도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정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윤정환 감독의 뒤를 이어 '고향팀' 강원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K리그에서 '준비된 사령탑'으로 불렸다. 일찌감치 '전략가'로 평가받았다. 2012년 대전에서 선수 은퇴한 정 감독은 울산대, 성남, 김천 등에서 코치로 활약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23년 6월 강원 수석코치로 온 정 감독은 윤 감독을 보좌해 준우승을 이끌었다. 강원의 변화를 이끈 공격적인 스타일로의 전환과 황문기 이기혁 이유현 등의 포지션 변경이 정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정 감독은 11년 코치 생활을 뒤로 하고, 마침내 사령탑으로 기회를 얻었다.
언제나 당당한 정 감독 답게 출발부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스스로도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밖에서야 '지난 시즌 준우승팀이 그래도 썩어도 준치는 될 것'이라 이야기 했지만, 내부에서 본 강원은 달랐다. 양민혁의 해외 이적, 황문기의 군입대 등 핵심 전력이 빠지며 전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들을 대신할 특급 자원들의 영입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핑계대지 않았다. 정 감독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는 것도 내 몫"이라며, 안에서 답을 찾았다. 오래전부터 구상한 후방 빌드업 축구를 플랜A로 내세웠다.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대구FC와의 개막전 패배후 3경기 무패로 안정감을 찾는 듯 했다. 정 감독식 디테일 축구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3연패에 빠졌다. 문제는 마무리였다. 첫 7경기에서 단 4골에 그쳤다. 양민혁 황문기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고, 이들을 대신 해야할 외국인 선수들은 일찌감치 전력 외로 분류됐다. 마리오와 호마리우는 각각 2경기, 1경기만을 뛰고 짐을 쌌다. 당연히 공격포인트는 없었다.
위기였다. 정 감독은 삭발까지 했다. 10년 넘게 쌓은 내공의 힘은 어디가지 않았다. 화력 싸움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정 감독은 버티는 축구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선수가 보강되고, 전역생이 돌아오는 6월까지만 버티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내린 정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버렸다. "정경호가 감독이 돼서 실리축구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내가 제일 답답하다. 하지만 지금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쫓아갈때다."
정 감독은 과감한 압박을 통해 상대가 못하는 것을 막았다. 과정 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췄다. 강원은 8라운드부터 17라운드까지 10경기에서 4승을 수확했다. 이정효 감독의 광주FC를 두 번이나 잡았다. 물론 그 사이 공격적인 빌드업과 패턴에 대한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강원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지만, 꾸준히 승점을 쌓은 덕에 6위권과의 승점차는 크지 않았다. 초보 감독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변화였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 얻은 승점은 파이널A행의 결정적인 포인트가 됐다.
마침내 약속의 여름이 왔고, 정 감독은 대반전의 서막을 열었다. 김건희 모재현을 영입하고, 서민우 김대원이 전역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앞선의 무게감이 달라지자, 강원의 축구도 달라졌다. 터닝포인트는 6월21일 대구와의 20라운드였다. 강원은 시즌 최다 득점에 성공하며, 3대0 완승을 거뒀다. 자신감을 얻은 정 감독은 '변칙' 대신 '정공법'을 꺼내들었다. 상대에 맞추지 않고, 강원이 잘하는 축구로 맞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강원은 대구전 승리부터 33라운드까지 14경기에서 단 2패(5승7무)만을 당했다. 외국인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탓에, 마무리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경기력 자체는 가장 돋보였다. 정 감독은 결국 시즌 전 목표로 한 '파이널A 진출'에 성공했다. 스플릿 라운드에서 힘을 내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염두에 둘 수 있는 위치다. 첫 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시간은 정 감독을 배신하지 않았다. 후배들이 단숨에 감독 자리에 올라서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정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왜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라는 원망 보다는 '기회가 온다면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는 각오가 더욱 커졌다. 묵묵히 감독을 보좌하고, 묵묵히 선수들을 지도하고, 묵묵히 자신만의 축구를 만들어 가며 쌓은 11년의 내공은 결정적인 순간 힘을 냈고, 달콤한 열매로 돌아왔다. 선수로, 코치로 두번의 챕터를 넘긴 정 감독의 축구 인생 3막은 지금부터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2025-10-20 11:5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