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위에 스며든 찰나의 감동…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 미술(종합)
국립중앙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특별전
日 중요문화재 포함 62건 한자리…내년엔 도쿄서 '한국미술' 소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푸른 하늘을 담은 듯한 도라지꽃,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흰 꽃송이를 피운 국화….
소맷부리가 짧은 기모노인 '고소데' 위로 가을이 펼쳐져 있다.
여느 그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바탕이 옷이라는 점.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1658∼1716)은 비단 위를 가을꽃으로 아름답게 채웠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 여성들은 고린과 같은 유명 화가가 직접 그린 고소데를 갖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을 풀은 인기였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문화에 깊숙이 자리한 아름다움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두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이 준비한 교류 전시의 하나다. 때로는 익숙하면서도 때로는 낯선 일본 미술과 친해질 기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도쿄(東京)국립박물관과 함께 오는 17일 상설전시관 306호 전시실에서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특별전을 선보인다.
일본의 '보물' 격인 중요문화재 가을풀무늬 고소데를 비롯해 62건을 한데 모았다.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38건은 처음으로 한국 나들이에 나선다.
김재홍 관장은 16일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일본 미술의 안과 밖, 특히 내면에 깃든 정서에 초점을 맞춰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 폭을 넓힐 수 있도록 꾸몄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일본 미술과 그 아래에 자리한 미(美)의식을 '꾸밈의 열정', '절제의 추구', '찰나의 감동', '삶의 유희'라는 4가지 열쇠 말로 풀어낸다.
조몬(繩文)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5천년의 미술사를 그림, 복식, 공예 등으로 보여준다. 두 박물관이 '대표 소장품'이라고 자신하는 미술품들이다.
겉면에 새끼줄로 새긴 무늬가 특징인 토기, 색색의 꽃이 돋보이는 채색 자기, 금은 가루로 장식하는 마키에(蒔繪) 기법의 상자 등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봉황과 공작을 그린 금빛 6폭 병풍은 놓치지 말아야 할 주요 전시품 중 하나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에 걸쳐 성행한 다도 문화를 보여주는 찻잔, 차통, 찻숟가락, 물항아리 등도 한자리에서 소개된다.
일본 문화에 깃든 '아와레'(あはれ) 정서를 소개한 부분은 흥미롭다.
'아와레'는 '아아'하고 내뱉은 감탄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애잔한 정서를 나타낼 때 쓰인다.
권강미 학예연구관은 "'아와레'는 가장 낯설고 생소한 부분"이라며 "한국에서 '한'(恨)이란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와레'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전시에서는 일본 고유의 시가인 와카(和歌), 고전 문학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가을풀이 묘사된 그림과 옷 등을 통해 '아와레'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특정한 시대나 장르가 아닌 일본 미술 전반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비극적 서사를 가진 극인 노(能)에서 쓰는 가면, 자수처럼 보이도록 가을풀 무늬를 짜 넣은 의상 등은 평소 쉽게 보지 못하는 유물이다.
특별전을 통해 일본 미술의 특징을 '요약'해서 본 뒤, 상설전시관 내 일본실을 방문하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후지와라 마코토(藤原誠) 도쿄국립박물관장은 "한국과 일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 문화, 미술 등에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며 "앞으로도 두 박물관의 협력과 우정이 굳건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박물관은 내년 2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 미술의 보석상자'를 주제로 한 협력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8월 10일까지.
yes@yna.co.kr
<연합뉴스>
2025-06-16 16: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