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전설의 은퇴…"초등학생의 후회가 런던 金 양학선으로"
24년 선수 생활 끝…"인생 2막에서는 체조 더 알릴 것"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도마 전설' 양학선(32)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느낀 '후회'가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을 만들었다며 24년 동안의 체조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양학선은 2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되고 더 잘할 걸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회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참가한 전국소년체전"이라며 "그 대회 평행봉 동메달이 인생 첫 메달이었는데, 그때의 서러움이 아직도 강렬하다"고 말했다.
양학선은 지난 27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사전경기로 치러진 체조 경기를 끝으로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조를 시작했으니, 인생의 2/3인 24년 동안 체조와 동고동락한 셈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체조 전설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굵직한 세계대회가 아닌,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소년체전이 '가장 아쉬웠던 순간'으로 뇌리에 남았다고 전했다.
양학선은 "당시 조금만 더 잘했어도 1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실수를 조금 해서 동메달로 밀려난 게 그렇게 아쉬웠다"며 "후회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본 대회가 그 대회였고, 그때의 감정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다시는 그 감정을 느끼기 싫었기에 그날의 서러움, 아쉬움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것 역시 독기에서 비롯됐다.
양학선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한 달 앞두고 첫 국제대회 무대인 세계선수권에 출전했으나 실수로 인해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정말 조그마한 실수를 했다. 국내 대회였으면 무조건 1등 할 점수인데, 거기서는 내가 한 발 더 움직였다고 해서 등수에도 못 들었다"며 "첫 국제대회였는데 충격을 받았다. 유럽 심판진들이었는데, 여기서 내가 지지 않으려면 더 높은 난도의 기술을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억울함과 서러움을 바탕으로 독기를 품은 양학선은 신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2010년 10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친 직후 '한 바퀴를 더 틀겠다'며 지도자에게 달려간 양학선은 코치와 의논하고 조언을 받으면서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데 집중했고, 불과 9개월 만에 신기술을 실전에서 선보였다.
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세 바퀴(1천80도)를 돌아 착지하는 '양학선'(난도 5.6점) 기술은 현재까지도 도마 최고난도 기술 중 하나다.
'양학선'을 앞세운 양학선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선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 세계선수권에서 계속 금메달을 따면서 달려왔기에 런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선수보다 한발짝 앞서 있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1차 시기에서 기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해 긴장감에 휩싸일 법도 했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실수만 하지 말자. 하던 대로만 하자'며 마음을 비운 양학선은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양학선은 "정말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체조가 올림픽에서 은메달, 동메달은 많이 땄고 아시안게임이나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은 땄는데 올림픽 금메달이 없어서 체조가 덜 알려진 감이 있었다"며 "내 금메달로 체조를 더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뿌듯하게 말했다.
남들보다 전성기가 빨리 왔던 탓인지, 양학선은 이후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좀처럼 이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했다.
2014 세계선수권 이후 오른쪽 햄스트링, 2016년 오른쪽 아킬레스건을 차례로 다쳤고, 2023년에도 왼쪽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양학선은 "아킬레스건이 정말 인체의 약점인 게, 재활이 정말 오래 걸린다"며 "수술하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보조기를 차고 있어야 했고, 재활 기간이 하루하루 길어질수록 자신감이 지하 100층까지 뚫을 정도로 확 떨어진다"고 말했다.
회복에 매진한 끝에 약 1년 예상된 재활을 7∼8개월 만에 빠르게 마친 양학선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엔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결국 잦은 부상은 양학선의 발목을 잡았다.
양학선은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은퇴를 계속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으면서도 몸을 다시 만들어 복귀하겠다는 마음도 동시에 먹었다.
부상으로 그만두는 모습보다는 부상을 회복하고 다시 날아오른 체조 전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아직은 더 컸기 때문이다.
양학선은 "지난해 전국체전 동메달이 올해 은퇴 무대 동메달보다 더 값지다. 1년 3개월 만에 복귀해서 원래 기술만 한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처음 해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렁설렁하면서 메달 욕심을 내려놓고 운동한 게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시합에 나선 거다. 노장 선배지만 새 기술을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그 노력의 한 장면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인생 제2막을 살게 된 양학선은 '체조 선수 양학선'에게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 병원에 가도 도핑 걱정에 통증도 참으면서 치료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아프지 말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뛰어난 선수와 좋은 지도자는 다르다는 생각에 아직 별다른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만 체조 후배를 향해서는 "자기만의 감각과 기술을 충분히 익혔을 때 사라진 겁과 차오른 자신감을 기반으로 너의 기술을 따로 만들어내라"라며 "자기 신체 특징을 빨리 알고,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닌 좀 더 집중적으로 살핀다면 전성기를 더 오래 유지하면서 체조를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22개월이 된 아들이 후일 아빠를 따라 체조선수를 한다고 하면 어떨까.
양학선은 "'절대 안 시킨다'는 마인드"라면서도 "아무래도 나를 따라다니다 보면 이러나저러나 한 번씩 체조장에 가게 될 것이고,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접하다 보면 체조를 하고 싶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신중하게 말은 하되, 그렇다고 말리진 않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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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25-09-29 15:0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