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패가도' 우상혁 "중국, 한국 이어 일본서도 애국가 울려야죠"
도쿄 세계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강력한 우승 후보
한국 육상 최초의 실외 세계선수권 우승 도전
(진천=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중국, 한국에서 애국가 울렸으니, 일본에서 올해 세 번째 애국가 들어야죠."
'스마일 점퍼' 우상혁(29·용인시청)은 화려한 이력이 쌓일수록 '말의 강도'를 낮춘다.
하지만 "야망은 줄지 않았다"고 했다.
2025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막바지 훈련 중인 우상혁은 8일 진천선수촌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예선을 잘 뛰고, 결선에서 남은 힘을 모두 쏟아내겠다"며 "그동안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다. 이번에도 응원해주시면 좋은 에너지를 선물해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예전보다 '낮은 강도'의 출사표였다.
우상혁은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14일 오후 6시 40분 예선, 16일 오후 8시 45분에 결선을 치른다.
16일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우상혁이 정상에 오르면, 한국 육상 최초의 실외 세계육상선수권 챔피언이 탄생한다.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우상혁은 "비장의 카드를 결선에서 보여드리겠다"고 웃으며 "3월 중국 난징 세계선수권, 5월 한국 구미에서 우승했다. 도쿄에서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애국가를 듣고 싶다"고 '야망'을 드러냈다.
우상혁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꾼 리빙 레전드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2m35로 4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점퍼로 도약한 우상혁은 2022년 베오그라드 세계실내선수권에서 우승(2m34)한 뒤 기세를 이어가 같은 해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치른 실외 세계선수권에서 2위(2m35)를 차지했다.
2023년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서도 우승(2m35)했다.
세계실내선수권 우승, 실외 세계선수권 2위,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 우승 모두 한국 육상 최초다.
올해에는 한국 최초로 실외 세계선수권 우승에 도전한다.
도쿄로 향하는 과정은 매우 순조롭다.
우상혁은 올 시즌 출전한 7개의 국제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실내 시즌 3개 대회(2월 9일 체코 실내대회 2m31, 2월 19일 슬로바키아 실내대회 2m28, 3월 21일 중국 난징 세계실내선수권 2m31)에서 정상에 오르더니, 실외 시즌에서도 4개 대회(5월 10일 왓 그래비티 챌린지 2m29, 5월 29일 구미 아시아선수권 2m29, 6월 7일 로마 다이아몬드리그 2m32, 7월 12일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 2m34)에서 1위를 차지했다.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에서는 도쿄 세계선수권 기준 기록(2m33)을 통과했다.
우상혁은 "올해 목표가 난징 세계실내선수권, 구미 아시아선수권, 도쿄 세계선수권 우승이었다"라며 "이제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울린 경고음도 희망의 신호로 바꿨다.
우상혁은 8월 10일 독일 하일브론 국제 높이뛰기 대회 출전을 앞두고 종아리에 불편함을 느꼈다.
결국 우상혁은 출전 자격을 갖춘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도 불참했다.
우상혁은 "예전 같으면 그냥 통증을 참고 경기에 출전했겠지만, 더 큰 목표(도쿄 세계선수권 우승)가 앞에 있으니 욕심을 누르기로 했다"고 떠올렸다.
예정보다 빨리 귀국한 우상혁은 병원 검진에서 종아리 근막 손상 진단을 받았다.
우상혁은 "2주 동안 치료에 전념했고, 8월 말부터 정상 범위라는 소견을 듣고 다시 훈련 강도를 높였다"며 "다음 주 세계선수권에서는 더 좋은 몸 상태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혁이 은인이라고 부르는 김도균 용인시청 감독(국가대표 코치)은 더 세밀하게 우상혁의 몸 상태를 살피고, 훈련 일정을 촘촘하게 짰다.
우상혁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며 더 좋았겠지만, 종아리 통증이 도쿄 세계선수권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더 세심하게 몸을 살피고,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우상혁이 세운 이정표 뒤에는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
우상혁은 8살 때 당한 교통사고 탓에 오른발은 왼발보다 작다.
키 188㎝로 세계적인 높이뛰기 선수로는 작은 편이다.
'짝발'과 '단신'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점퍼로 도약했다.
2022년 유진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차지했을 때도 극소수만 아는 고통을 겪었다.
우상혁은 "외부에 처음 공개하는 비화"라며 "유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며 전지훈련을 하던 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 대회 직전에 음성 판정을 받아 가까스로 대회에 출전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경기력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김도균 감독님까지 허리를 다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그냥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귀국할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우상혁이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김도균 감독이 극적으로 대회 당일에 걷기 시작하면서 우상혁은 유진 세계선수권에 출전했고, 우상혁은 빛나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상혁은 "그땐 정말 '예선 탈락해도 아쉬워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는데 2위를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긴 시간 훈련을 잘한 덕에 단기간 변수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우상혁은 쉼 없이 달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다고 자신한다.
8월에 당한 종아리 부상에도 우상혁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마침 이번 세계선수권은 4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우상혁이 세계적인 점퍼로 도약했던 경기장에서 열린다.
우상혁은 "도쿄올림픽에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며 "그때보다 지금 더 '준비된 상태'로 도쿄에 간다"고 했다.
실제 2021년 우상혁은 32명 중 31위로 도쿄행 티켓을 얻었고, 올림픽 무대에서 4위를 했다.
올해에는 도쿄 세계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엔트리 38명 중 우상혁의 이름이 가장 위에 있다.
올 시즌 우상혁이 실외 경기 세계 1위 기록(2m34)을 세웠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우상혁과 파리 올림픽 챔피언 해미시 커(뉴질랜드)를 도쿄 세계선수권 우승 후보로 꼽는다.
커는 우상혁이 출전하지 않은 실레지아 다이아몬드리그와 취리히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에서 모두 우승했다.
우상혁은 자신감이 충만하지만, 자만하지도 않는다.
올 시즌 우상혁은 커와 4번 만나 모두 승리했다.
우상혁은 "커가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경기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한 친구인 커와 경쟁하는 게 재밌다"며 "나도 열심히 했지만, 커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것이다. 일단 나에게 집중하면 커와 재밌는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상혁은 수없이 성공을 거뒀고, 파리 올림픽 7위 등의 몇 차례 실패도 겪었다.
그 사이, 우상혁은 더 단단해졌다.
우상혁은 커를 예우하면서도 "올해 자만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니,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며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할 기회가 왔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우상혁이 그 기회를 잡으면, 9월 16일 한국 육상의 역사가 바뀐다.
jiks79@yna.co.kr
<연합뉴스>
2025-09-08 15:41:50